폴 매카트니가 지난 2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내한공연 도중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지난달 17일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개봉을 앞두고 히어로들이 단체로 한국에 왔다. 올해 세번째 방한인 단골손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시작부터 "쇼핑이 밀려있으니 최대한 빠른 진행을 부탁한다"며 농담을 던질만큼 여유가 넘쳤다. 능글맞은 캐릭터 '아이언맨'으로 한국에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그다. 헐크 역의 마크 러팔로는 한국 방문이 처음이었다. 이날 그가 내뱉은 첫 마디는 특별할 게 없었다. 그저 활기찬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외쳤다. 팬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이 한마디가 뭐 그리 대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되묻겠다. 한국어로 말했는데?
길에서 지나가는 외국인이 길을 물어도 한국어로 하면 달리 보인다. 방송에서는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외국인 출연자들이 인기다. 하물며 인기 절정의 해외 스타가 한국어를 하는데, 어떤 한 마디가 대수롭지 않으랴. 타국을 방문하면서 그 나라 인삿말 정도는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매번 이슈가 된다. 반갑고 고마운 거다. 이게 한국 정서다.
지난 2일 폴 매카트니(73)가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한국 팬들과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만남이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팝스타인 그의 첫 마디에 공연장은 함성이 폭발했다. "안뇽하세요! 한국 와서 조우와요우!"
비틀스로 데뷔한 지 53년. 그 세월만큼 기다린 팬들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그는 노래와 연주를 쏟아냈다.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한국어 구사가 눈길을 끌었다. 시작부터 "오늘 핸국말 해보겠습니다"로 의지를 보였고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고마워요" "대박"과 같은 고마움을 표현했다. 서툴지만 곡 소개도 꼬박꼬박 한국어로 했다. 160분 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37곡을 흔들림 없이 부른 세월의 무색함, 4만5000명이 '렛 잇 비'와 '헤이 주드'를 '떼창'하는 장관, 철철 내리는 비를 맞으며 뛰는 '광인(狂人)'들의 출몰 등 이날의 명장면은 차고 넘친다. 그걸 완전하게 만든 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국어였다.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부르며 외치던 "함께해요", 6곡의 앙코르 곡을 부른 뒤 아쉬운 목소리로 내뱉은 "가야해요"와 같은 말들은 매카트니와 팬들이 하나되는 주문과도 같았다.
매카트니는 해외 공연에서 그 나라 언어를 준비하기로 유명하다. 공연장에서 팬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그의 노력이다. 한국 팬들은 열렬히 화답했다. '롱 앤드 와인딩 로드'에서 일제히 붉은색 하트가 그려진 카드를 머리 위로 흔들었고 '렛 잇 비'에서는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 장관을 연출했다.
'헤이 주드'에선 'NA'가 적힌 카드를 들고 후렴구인 '나나나~ 나나나나~'를 열창했다. 매카트니는 다음날 트위터에 "아시아 투어의 환상적인 클라이맥스. 한국 팬들은 가장 큰 환대를 해줬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마지막 곡으로 부른 '디 엔드'의 가사는 절묘하게 이날의 교감을 압축했다. "그리고 결국 당신이 받는 사랑은 당신이 준 사랑과 같아요(And in the end, the love you take is equal to the love you make)."
이다해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