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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통신산업, 활로는 있는가?] 유럽, 알뜰폰 진입 무분별 허용.. 과당경쟁으로 통신산업 '뒷걸음질'

英에만 MVNO 83곳 달해 이동통신사들 '투자 축소' LTE도 제대로 구축 안돼

[위기의 통신산업, 활로는 있는가?] 유럽, 알뜰폰 진입 무분별 허용.. 과당경쟁으로 통신산업 '뒷걸음질'

글로벌 이동통신 산업을 주도하던 유럽 이동통신 회사들이 과당경쟁과 정부의 규제 등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통신요금을 절감하겠다며 이동통신 사업자(MNO)를 늘리고, 알뜰폰(MVNO, 이동통신 재판매)사업자의 진입을 무분별하게 허용하면서 대표적인 이동통신 회사들의 투자여력이 떨어져 동반 몰락을 하게 된 것이다.

유럽 각국 정부가 뒤늦게 사업자간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미 경영활동에는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10일 이동통신 업계와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등에 따르면 유럽의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률은 지난 2009년 76%에서 2014년 기준 79% 정도로 5년 동안 3%포인트 성장하는데 그쳤다. GSMA는 오는 2020년에도 82% 정도의 가입률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업이익률도 큰 폭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08년 34.6%였던 영업이익률이 2013년에는 28.1%로 6.5%포인트나 줄었다.

■허울만 남은 옛 '세계최대 이통사' 보다폰

영국 보다폰은 한 때 세계 최대 이동통신 회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계 1위 자리를 미국 버라이즌에 넘겨주고 허울만 남았다.

유럽 이동통신 시장의 전반적인 축소가 그 원인으로 꼽인다. 보다폰은 지난 2005년 4·4분기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는 33.95%였다. 지난해 3·4분기는 20.90%로 13.05%포인트 낮아졌다.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이동통신 시장에 충격을 던져줬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유럽, 미국의 주요 이통사들의 영업이익률은 대체로 20~30% 안팎이다. 미국 1위 AT&T는 매 분기 3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를, 일본 NTT도코모는 2000년대 중반 40%대에서 최근 들어 30%대 정도로 낮아졌다.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30~40%의 영업이익률 조차도 위기로 판단, 해외 이통사들은 투자를 꺼리는데 반해 국내 이동통신사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이어왔다"며 "이런 선제적인 투자가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과당경쟁, 유럽 이통사 쇠락 원인

유럽 이동통신 산업 쇠락의 가장 큰 이유로는 과당경쟁이 꼽힌다. 영국은 자체 통신망을 가진 이통통신사업자(MNO)가 3곳인데 반해 알뜰폰 사업자는 무려 83곳이다.

프랑스는 7곳의 MNO와 52곳의 알뜰폰 업체가 경쟁 하고 있으며, 이통사가 가장 적은 스페인은 2곳의 MNO와 29곳의 알뜰폰 업체가 이동통신 서비스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회사 한 관계자는 "유럽 이동통신 시장에서 알뜰폰 업체들은 서비스 차별화를 위한 자체 투자 보다는 소매-도매간 격차를 통한 이익 만을 추구(cherry picking)하고 투자 불확실성이 높은 이동통신 시장에서 투자보다는 MNO에 무임승차해 이익을 늘리는데만 집중해 왔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프랑스 정부는 서비스 기반 경쟁을 위해 MVNO 및 설비기반 없는 제4이통사에 MVNO와 유사하게 로밍을 통한 서비스 제공을 허용했다.

이후 심각한 저가요금 경쟁을 촉발해 MNO들의 수익성을 악화시켰으며 투자여력이 저하된 MNO들은 정부에 네트워크 공유를 요청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네트워크 공유는 MNO들이 네트워크 설비를 구축하지 않고 MNO끼리 기존 설비를 공유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을 뜻한다. 단순 로밍에서 벗어나 안테나, 기지국, 교환기 등의 범위로 공유가 확대되면서 실질적인 설비는 늘어나지 않아 통신 속도나 서비스 품질은 제자리 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유럽 내 전체 인구 대비 LTE 커버리지는 지난해 기준 63%에 불과하며 오는 2020년에도 83%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GSMA의 전망이다. 5억명을 넘는 유럽연합(EU) 전체 인구 중 LTE 가입자 수는 올해 겨우 1억명을 넘어 2020년에야 4억명에 도달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이통사의 투자 축소로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영국 런던 등 각국 수도와 주요 도시에서도 아직 LTE가 제대로 구축이 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반면 한국 이동통신사들은 오는 2020년 5세대(5G) 구축을 추진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투자에 전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