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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통신산업, 활로는 있는가?] (3·끝) '우물안 개구리'식 경쟁방식 변화 필요

집안 싸움만 하다간 '공멸'.. 미래·글로벌 경쟁 전략 짜야
통신서비스 GDP 기여도 OECD 국가 중 2위 차지
산업연관효과도 높아져 5G 시대 글로벌 경쟁을

[위기의 통신산업, 활로는 있는가?] (3·끝) '우물안 개구리'식 경쟁방식 변화 필요


#.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5'. 황창규 KT 회장의 기조연설을 앞둔 행사장은 전 세계에서 온 이동통신 관계자들로 일찌감치 북적였다. 꽉 찬 대중 앞에 나선 황 회장은 동영상을 통해 차 안에서 '사무실'이라고 말하자 5세대(5G)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최적의 경로를 산출해 자동으로 운행하는 자신의 차를 보여줬다. 이동하는 도중 화상 전화로 미국, 중국, 스페인의 사업자와 회의를 진행하며, 모든 자료와 대화는 실시간 자동 번역되는 장면도 등장했다. 황 회장이 홀로그램으로 손녀의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상은 마무리됐다.

이미 한국은 글로벌 이동통신 시장에서 4세대인 롱텀에볼루션(LTE)을 가장 먼저 도입하고, LTE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발굴하는 등 세계 통신산업 선도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 표준화 단체에서도 발언권이 높아져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세계 최고 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의장직을 맡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국내 통신업체들은 여전히 20년전 경쟁방식 대로 집안 싸움만 벌이고 있어, 스스로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LTE 시대에 무선인터넷이 사용이 소비자의 일상을 바꿔 놓고 있지만 이동통신 회사들은 여전히 가입자 수를 세는 것으로 기업의 가치를 자랑한다. 통신회사들의 마케팅 기법이라고는 고작 휴대폰 보조금을 연간 5조원 이상 뿌려가며 경쟁회사의 가입자 뺏기 외에는 개발된 것이 없다.

한국의 ICT 산업은 통신회사의 첨단 통신망 위에서 성장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세계 최고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세계 최고의 통신망 덕이다. 이 때문에 국내 통신산업의 위기는 국내 ICT 생태계 전체의 위기로 직결될 수 밖에 없다.

■韓 통신서비스 GDP 기여도 세계 2위

12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등 연구기관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통신서비스가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하는 비중은 4.36%로 OECD 국가 중 2위다. OECD 평균이 2.95%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비중이다.

지난 2013년 KT, SK텔레콤, LG U+ 통신 3사는 약 7조2000억원의 설비투자(CAPEX)를 집행했다. OECD 회원국 중 매출액 대비 투자비 비중은 멕시코, 칠레에 이어 3위다. 이동통신 강국인 일본이 4위, 미국이 13위, 영국은 17위 정도에 그쳤다.

ETRI 송영근 산업분석연구팀 선임연구원은 "오는 2017년 이동통신의 산업 경제적 파급효과는 기기, 장비, 서비스의 생산유발액이 각각 17조9000억원, 3조6000억원, 48조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부가가치 유발액은 각각 4조5000억원, 1조4000억원, 24조8000억원, 고용유발인원은 각각 5만명, 1만4000명, 23만6000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이통업의 산업연관효과는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이동통신 산업이 국내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여전히 가입자 숫자로 통신사 평가

이동통신 서비스의 생산유발 전후방 연쇄효과가 증가하는 이유는 금융, 의료 같은 주변산업과 융합하는데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무인자동차 등 신산업은 물론 기존 산업 간의 융합도 가속화된다는 기대가 이미 반영된 것이다.

이들 신산업은 금융거래 한 건도 가입자가 될 수 있고, IoT를 통해 칩이 내장된 가로등이나 의료기기도 통신회사의 가입자가 될 수 있다. 결국 앞으로 통신회사는 가입자 숫자 보다는 각각의 가입자를 통해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내느냐가 경쟁의 관건이다.

그런데도 국내 통신 3사는 여전히 매월 가입자 숫자를 세는 것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한다. 이 때문에 월말이면 통신회사 영업담당 임원은 가입자 숫자를 늘리기 위해 불법보조금을 뿌려댈 수 밖에 없다. 시장과 산업은 세계 최첨단을 지향하면서도 통신사들 스스로는 정작 30년전 영업과 마케팅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규제 의존형 경쟁 구도

게다가 통신업체들의 경쟁구도 역시 규제의존형이다.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을 설득할 생각 보다는, 경쟁사에 불리한 규제환경을 만들어 혼자 득을 보겠다는 전략이다.

여전히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마케팅 보다는 경쟁사의 손발을 묶어두는 손쉬운 경쟁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전략이 정부의 규제를 늘리고 결과적으로 통신산업 규제강화의 악순환을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5G라는 미래 통신 기술을 먼저 개발해 선점하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음을 감안하면 규제를 끌어들여 경쟁하는 집안 싸움에만 몰두할 때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통신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구글이 주파수 없이 이동통신 시장에 진입했고, 애플이 스마트폰으로 이동통신 서비스 대부분을 제공하는 시대"라며 "국내 통신회사의 경쟁자는 옆집 통신회사가 아니라 바다 건너에서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는 구글, 애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 이동통신 회사들이 5G 시대의 글로벌 경쟁을 지향하지 못한채 우물안 개구리식 집안싸움에만 집착하고 있으면 결국 모두가 공멸하는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통신업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eyes@fnnews.com 황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