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님 'Untitled'
'내게 긴 두 팔이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안아주고 싶다.' 파독 간호사 출신 화가 노은님(69)이 국내에서 4년 만에 펼치는 개인전 타이틀이다. 지난해 KBS 해외동포상 문화예술 부문상을 받았을 때 밝힌 수상 소감에서 따온 제목이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그의 그림을 빼닮은 이 말은 작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예술정신과 삶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애틋하다.
지난 1970년 우연히 신문에 난 모집공고를 보고 독일로 이주한 작가는 함부르크 병원에서 중환자, 행려병자 등을 보살피는 간호보조원으로 일했다. 감기에 걸려 출근하지 못한 그를 병문안 왔던 간호장이 그의 방에 가득 쌓여 있는 그림을 보고 전시회를 열어줬다. 병원 한쪽 공간에서 열린 그 전시의 제목은 '여가를 위한 그림'.
이를 계기로 노은님은 간호복을 벗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뒤늦게 들어간 대학(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에서 칸딘스키의 직계 제자인 한스 티만 교수를 만나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90년부터 2010년까지는 이 대학 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인생의 숙제를 푸는 데 그림은 나에게 도구였으며 길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태우고, 녹이고, 잊고, 들여다보았다. 살아남는다고 전쟁터 병사처럼 싸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풀밭에서 뛰노는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
노은님의 그림에는 주로 새와 물고기 등 자연적 소재가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어둡지 않은 초록과 노랑, 갈색과 검은 빛이 그의 그림에 주로 등장하는 색깔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60여점의 신작과 도자기, 모빌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내게 긴 두 팔이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안아주고 싶다는 그 마음 그대로다. 전시는 31일까지.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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