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욱 감독의 영화 ‘무뢰한’은 진심을 숨긴 형사와 거짓이라도 믿고 싶은 살인자의 여자, 두 남녀의 피할 수 없는 감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배우 김남길은 ‘무뢰한’을 통해 그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그에게는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순정남도, 사랑하는 여인의 곁을 과묵하게 지키던 로맨틱 가이도, 코믹한 산적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김남길은 극 중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정의와 불의를 가리지 않는 형사 정재곤 역을 맡았다. 정재곤은 살인용의자 박준길(박성웅 분)을 잡기 위해 그의 감방 동기 이영준의 이름으로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그의 여자 혜경(전도연 분)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정재곤은 혜경의 곁에서 지내며 목표와 달리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무뢰한’은 제 68회 칸 영화제 공식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다. 덕분에 김남길도 생애 처음으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아볼 수 있었다. 국내서도 개봉을 앞두고 있었기에 기쁨과 설렘도 잠시, ‘무뢰한’ 홍보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영화제를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국내 일정 때문에 그럴 수 없었어요. 전에는 칸 영화제에 대해 체감하지 못했었는데, 작품을 가지고 나가 이야기 하는 게 좋았어요.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잖아요. 물론 경험이 없어서 도연 누나가 하라는 대로 했죠. 덕분에 ‘칸 신생아’라는 별명이 굳어져 버렸네요. 그저 도연 누나가 ‘칸의 여왕’이니까 거기에 맞는 별명으로 ‘칸 신생아’라고 했는데,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네요. 하하”하드보일드 멜로. 오승욱 감독은 ‘무뢰한’의 장르를 이렇게 정의했다. ‘하드보일드(자연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주제를 냉철하고 무감한 태도로 묘사. 캐릭터나 사건이 비정한 것이 아니라 작가(감독)의 표현이 건조하고 냉정하다는 의미)’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물음표를 던진다. 단어의 뜻 그대로 오승욱 감독은 무례하게 ‘무뢰한’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는 ‘무뢰한’ 만의 매력으로 작용한다.“하드보일드는 저도 처음에 생소했어요. 방법론 적인 이야기죠. 거칠지만 밋밋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마냥 어렵고 심오한 작품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겪었을 법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해요. 굳이 의미를 찾기보다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재미를 느끼셨으면 해요. 무거운 부분이 있는 반면에 위트가 있어 편안하게 볼 수 있거든요.”
이는 김남길 특유의 분위기와도 잘 어우러진다. 밝고 유머러스한 그의 모습들이 캐릭터에 녹아들어 더욱 독특한 분위기의 정재곤을 만들어냈다. 오승욱 감독의 15년 만의 복귀작이자, 자신이 그토록 함께 호흡을 맞추고 싶었던 전도연과의 작품이었기에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캐릭터에 대한 욕심 또한 컸다.
하지만 정재곤은 김남길에게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배우마다 다양한 스타일이 있겠지만, 제 경우에는 캐릭터 안에 갇혀서 연기하다 보면 영화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게다가 아집을 부리게 되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힘을 뺀다고 생각했어요. 캐릭터를 잡았을 때도 많은 것들을 표현한다기보다 더도 덜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끝내고 싶었어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에서 말이죠. 정재곤은 터트리기보다 많은 것들을 배제시켜 편안하게 보게 하려 했어요. ‘무뢰한’은 평범한 일상을 꿈꾸지만 그러지 못하는, 일방통행 적이고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이처럼 무례하면서도 수컷 냄새 가득한 비정한 형사 김남길의 모습은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무뢰한’에서 만나볼 수 있다.
/fnstar@fnnews.com fn스타 조정원 기자 사진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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