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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art와 함께 하는 그림산책] 수심 가득한 호랑이는 짐작했었나 보다

사석원 개인전 '고궁보월'

[fnart와 함께 하는 그림산책] 수심 가득한 호랑이는 짐작했었나 보다
사석원 '1895년 경복궁 향원정 호랑이'

화면 가득 그려진 호랑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그 뒤로는 부엉이 두 마리와 노루 한 마리가 있고, 햐얀 눈을 뒤집어쓴 누각 위로는 휘영청 보름달이 떠 있다. '원색의 화가'로 불리는 사석원 작가(55)의 신작 '1895년 경복궁 향원정 호랑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작품 제목에 노출된 '1895년'이라는 시기와 그림 속 '향원정'이다.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향원정은 1873년 22세의 고종이 한 살 연상인 명성황후를 위해 경복궁의 별궁인 건청궁에 연못을 파고 그 위에 지은 누각이다. 그리고 1895년 을미년은 건청궁에 기거하던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살해된 바로 그해다. 사석원 작가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펼치고 있는 3년 만의 개인전 '고궁보월(古宮步月)'이 단순한 고궁 그림 전시회일 수 없는 이유다.

사석원 작가는 전시에 앞서 내놓은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궁은 시간과 함께 퇴색하는 관광이 아니라 역사에 비추어보는 관조일 때, 배면의 사연을 살며시 들려준다. 또 궁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적 미의 원형이나 전형을 떠올리게 하고, 나아가 당대의 미학을 끌어올려야 하겠다는 고차원의 각성을 심어준다.
"

사석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특히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와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꿈꿨던 고종에 주목했다. 준엄한 역사 앞에서 비장할 수밖에 없는 정조와 고종은 그림 속에서 때론 근엄한 사자와 호랑이로, 때론 눈 맑은 사슴과 당나귀로 등장해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원색의 물감을 덕지덕지 바른 사석원의 그림이 역사학이 되는 순간이다. 전시는 7월 12일까지.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