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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눈빛, 그 속의 단단함이 빛났다

실내악 축제 '디토페스티벌' 음악감독 리처드 용재 오닐


따뜻한 눈빛, 그 속의 단단함이 빛났다

순수한 영혼, 맑은 내면을 간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들면서 알았다. 그러려면 꼭 갖춰야 할 것이 있었다. 영혼을 둘러싼 벽이 단단해야 한다는 것. 갈수록 많아지는 외부 자극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신념이 강해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벽은 약해지게 마련이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자꾸 타협을 시도하는 자신이 알고보면 가장 큰 적이다. 그래서 부러웠다. 투명한 눈빛보다도 그를 꽉 채운 단단함과 고요함에 샘이 날 지경이었다.

디토(DITTO) 페스티벌이 막 시작했을 무렵, 리처드 용재 오닐(사진)을 만났다. 서울 한복판, 통유리 너머로 남산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디토 얘기부터 꺼냈다. 디토 페스티벌은 예술감독인 용재 오닐을 축으로 젊은 연주자들이 만드는 실내악 축제다. 지난 2006년 시작해 올해로 아홉번째 시즌을 맞았다. 용재 오닐과 그의 친구들로 이뤄진 '앙상블 디토'는 클래식계의 아이돌로 여겨질 만큼 10~20대 고정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예상했나.

▲예상하지 못했다. 클래식 음악으로, 특히 실내악으로 청중의 관심을 끌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10~20대를 타깃으로 잡고 좀 더 상업적인 마케팅 전략을 선택해야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음악가는 음악의 정수를 지키며 고고하게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모든 연주자는 청중이 필요하고 우리의 메시지를 나눌 필요가 있다.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어렵다. 음악가로서 본분을 잃지 않으며 청중에 친근한 음악을 하는 건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벌써 9번째 시즌을 맞았다.

▲원래 10년을 계획한 프로젝트였다. 초반에는 쉬운 음악으로 시작했지만 중반부터 '디퍼런트 디토(Different Ditto)'라는 이름으로 현대음악, 실험적인 음악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점차 어려운 레퍼토리를 선보였지만 그동안 함께 성장한 관객들이 잘 공감해 주었다. 10년이 지나면 관객의 호응에 따라 지속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용재 오닐을 처음 알게 된 건 지난 2004년 '인간극장'을 통해서였다.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조부모 사이에서 자랐던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그의 음악보다 먼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 후 10년이 흘렀다. 그는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했고, 활발한 나눔 활동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다. 2년 전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과 함께 '안녕, 오케스트라'를 꾸렸고, 얼마 전에는 식수지원사업을 위해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했다.

―나눔 활동에 열의를 보이는 이유가 있나.

▲케냐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물을 주지만, 아이는 그 물 때문에 설사병으로 죽는다. 약 한알이면 나을, 아무것도 아닌 병에 말이다. 그들은 물을 찾기 위해 수㎞를 걸어가야 하고, 굶어죽을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그들 앞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연주하는 스스로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우리가 가진 것을 희생하지 않아도 쉽게 남을 도울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다.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어린시절의 영향도 있나.

▲다문화 가정보다 조부모의 교육 영향이 크다. 그들은 '삶은 다 소중하다'라는 가르침을 줬다. 삶은 누가 어떤 조건을 가졌느냐 못가졌냐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삶은 다 선물이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마음가짐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다. 조부모에게 받은 가장 훌륭한 유산이다.

―그런 활동들이 음악 활동엔 어떤 영향을 주나.

▲30년간 음악을 하면서 음악이라는 것이 단순히 음표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이 있고 넓은 의미의 어떤 예술의 경지에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더 많이 느끼고, 더욱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눔 활동은 인간 감정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UCLA의 교수이자 총 7장의 솔로 앨범을 가진 비올리스트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꾸준히 협연을 하며 최근에는 재즈에도 도전했다. 디토 페스티벌에 나눔활동까지. 말 그대로 '슈퍼맨'이다.

―당신의 꿈은 뭔가.

▲지난 10년간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궁금하고 배우고 싶었다. 나 자신을 더욱 넓혀 더욱 깊이 있고, 공감대가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베토벤보다 뛰어난 음악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다. 시도하지 않고 비판에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도 잃는다.
지금도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기적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나의 삶은 정말 훌륭한 여정이었다. 앞으로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된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