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 간에 여론전이 보다 거칠어지고 있다. 삼성은 KCC그룹, 엘리엇은 미국계 펀드를 각각 우군으로 삼고 표 대결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흩어진 소액주주를 끌어 모으기 위해 논리 싸움에 본격 나선 것이다. 최근 시민사회단체도 엘리엇의 투기적 행태를 비난하면서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삼성물산-엘리엇 여론전 치열
잠시 잠잠하던 삼성과 엘리엇의 싸움에 다시 불을 먼저 지핀 것은 엘리엇이다. 엘리엇은 26일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제안에 대한 엘리엇의 추가 관점'이라는 제목의 15페이지 자료를 통해 삼성물산 경영진이 다수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을 내놨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이사들은 법적 합병 비율만을 내세우고 있지만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어떤 합병 계약도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삼성물산과의 그간 접촉 경과를 상세히 공개하면서 삼성물산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이같은 엘리엇의 주장에 대해 대응을 자제하면서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삼성물산은 "해외 헤지펀드의 근거 없는 주장과 무분별한 의혹 제기, 여론전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서 "엘리엇의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없으며 삼성물산은 지금까지 주주와의 소통,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합병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삼성물산은 기업의 미래와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정당하고 적법하게 합병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시민단체와 해외 언론도 관심
이처럼 삼성물산과 엘리엇의 공방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국내 시민단체는 물론 해외 언론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삼성 미래를 위한 싸움'이라는 사설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반대하는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의 활동상을 보도했다. 소액주주 연대는 지난 5일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 보유를 공식화하자 인터넷에 카페를 개설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당장의 눈앞에 이익 보다는 국익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이들 소액주주와 반대 입장을 내놔 주목을 받고 있다.
전날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을 주요 내용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방침이 발표되자 다른 행동주의 펀드들과 마찬가지로 '소수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정의의 사도처럼 전면에 등장했다"면서 "엘리엇이 앞장 설 테니까 손해 봤다고 동의하는 주주들은 반 합병대열에 동참하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토론회에 나선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도 "투기자본들은 언제나 양면의 얼굴을 하면서 대주주의 전횡에 대한 소액주주의 이익보호를 내세운다"면서 "그러나 종국엔 막대한 이익을 챙겨 떠났다"고 강조했다.
■주총 앞두고 본격적인 표밭 단속
여론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표를 가진 우호 세력의 확보다. 때문에 7월 17일 열릴 삼성물산 주총을 앞두고 위임장 확보전(프락시 파이트)이 더욱 치열해 질 전망이다.
삼성물산은 전날 공시를 통해 "두 회사의 합병에 찬성하고 엘리엇의 주주제안에 반대하는 의결권을 회사에 위임해 달라"고 권유했다. 회사측은 "건설과 상사 부문의 매출 성장과 수익성 개선은 물론 그룹 신수종사업인 바이오 사업의 최대주주로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보다 하루 앞서 엘리엇은 "합병 결의안의 내용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심각하게 평가절하 하고 있다"면서 "합병 결의안에 대한 반대와 삼성물산 정관 개정을 위해 의결권 대리행사를 해달라"고 밝혔다.
위임장 확보와 함께 우군 확보에도 보다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은 KCC에 자사주를 매각해 5.96%를 확실한 우호 지분으로 확보했으며 지분 10.15%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 설득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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