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땐 '청년고용절벽'.. 임금피크제로 숨통 틔워야
55~59세 정년연장으로 장년층 연 10만명 잔류
대졸 구직자 꾸준히 늘어 세대간 갈등 극복이 관건
"숙련된 직원을 퇴물 취급하는 건 그들의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줄 수밖에 없고, 원래 있던 자리에 있게 해야 신입사원들도 보고 따라 배울 게 아닙니까."(SL 관계자) 경북 경산에 위치한 자동차부품 전문업체인 SL은 지난 2005년 임금피크제를 처음 도입했다. 이듬해 총 9명의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자를 배출했다. 경기는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본격 증가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신규 채용한 인원은 1949명이다. 이 가운데 55%인(1000여명)이 30세 미만 청년들로 채워졌다.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정년(만 60세) 연장이 의무화되면서 앞으로 3년간 청년들의 신규채용 문이 급격히 좁아지는 청년고용절벽 현상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2일 고용노동부 용역으로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고령자 고용연장 제도 연구'에 따르면 상용근로자 중에서 퇴직 연령계층에 속하는 55~59세 중장년층은 43만명가량이다. 60세로 정년이 연장된다면 43만명 중 일부가 정년연장의 혜택을 받게 된다.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이 수혜 규모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연평균 10만명가량 될 것으로 추산했다. 중고령자(55~59세) 30만명이 앞으로 3년간 노동시장에 그대로 잔류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반면 청년 대졸 구직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특히 대학 정원 증가와 고학력 선호현상으로 4년제 대졸 이상 증가 규모가 전체 전문대 이상 졸업자 증가율을 상회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06년 약 27만명이던 4년제 이상 졸업자 수는 지난해 3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사상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기록했던 '08~11학번' 세대들이 대학 입학 후 사회 진출까지 평균 7년가량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6년 31만9000명, 2017년 31만7000명, 2018년 32만2000명 등 매년 32만명씩 사회로 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올해를 필두로 청년실업률이 9.5%, 내년 9.7%, 2018년 9.9% 등 고공행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구직시장에 쏟아져나왔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실업자만 44만9000명(지난 5월 기준·통계청 발표)이다. 취업준비생을 포함한 잠재구직자와 시간제 근로자까지 더하면 이 수치는 두 배 이상으로 커진다. 기획재정부는 소위 '취업애로계층'이 115만7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정년연장의 수혜층이 주로 대졸자들이 희망하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근로자라는 점에서 소위 '양질의 일자리'를 놓고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자녀세대인 에코세대가 노동시장에서 병목현상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산학협력단 연구팀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고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청년 신규채용이 8.4%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당장 3년간 청년고용절벽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단기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지난달 27일 청년고용대책을 발표했다.
■"불신의 모델 되지 않게 신뢰모델 늘려야"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필두로 취업규칙 변경, 해고요건 완화 등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순차적으로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첫 과제인 임금피크제 도입부터 만만치 않다. 정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정규직 처우개선 차원에서 청년고용절벽 프레임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혁 전략을 전환했다. 당장 내년부터 정년연장 의무화로 청년일자리 확보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데다 청년고용 프레임이 비정규직 처우개선 프레임보다 훨씬 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논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부모세대의 양보가 자녀세대의 일자리로 이어질 것이냐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도 여전하다. 이화여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강모씨(28)는 "임금피크제.정년연장 모두 공기업 내지는 대기업 가운데서도 소수의 기업에만 해당되는 얘기"라며 "청년일자리가 늘지 않는 현상을 두고 평범한 아버지들이 기득권층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SL, 고려아연 등과 같은 노사 신뢰모델을 공유·확산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부장은 "임금피크제 확대가 곧바로 청년일자리 확대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제도의 타깃층이 '대기업과 공공부문' 일자리라는 점에서 다른 수단에 비해 청년일자리 확대의 가장 직접적인 경로라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고용절벽 프레임 뒤로 교육구조개혁 주문"
최근 경제5단체 중 한 곳인 대한상공회의소는 '청년실업 전망과 대책'이란 보고서를 통해 정부에 교육구조 개혁을 주문했다. "청년고용절벽 현상은 경제적 요인도 있지만 20년 전 대학 문턱을 낮췄던 근시안적 정원자율화정책이 대졸자 공급과잉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라며 급기야 대학 구조조정을 필두로 한 교육구조 개혁의 시급성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경제단체가 교육구조 개혁을 주문하고 나선 건 다소 이례적이다. 실제로 1990년까지만 해도 20만명(진학률 33.2%)이던 대학진학자 수는 1996년 정원자율화로 27만명(진학률 54.9%)으로 늘었고 지난해 36만명(진학률 70.9%)을 넘어섰다. 반면 대학진학 대신 취업전선에 뛰어든 고졸자 수는 1990년 26만명에서 1996년 22만명, 지난해에는 6만명가량으로 급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원희영 수습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