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 "좋은 작품·착한 가격으로 공공성부터 살려야죠"

첫 작품은 '나는 형제다'
보스톤마라톤 테러가 모티브 이번 작품도 상징·은유 많아 어렵지만 계속 생각하게 돼 인간에 대한 통찰 숨어있죠

고연옥 작가와 또 만났네요
명콤비라는 말 부담스럽지만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 "좋은 작품·착한 가격으로 공공성부터 살려야죠"


김광보(51)는 한국 연극계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스타 연출가'다. 1994년 극단 청우를 만들고 연출가로 데뷔한지 올해로 22년째.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부터 시작해 히서연극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동아연극상 등 굵직한 상은 모두 휩쓸었다. 동아연극상 연출상은 2012년과 지난해 두 번이나 받았다. 그가 손댄 작품은 작품성에 흥행까지 따라왔다. 연극 '사회의 기둥' 'M 버터플라이' '프로즌', 뮤지컬 '신과 함께' 등 최근작들은 줄줄이 히트를 쳤다.

한해 동안 7~8개의 작품을 소화하며 활약하던 그가 지난 6월 1일자로 역대 최연소 서울시극단장에 임명됐다. 극단 청우의 대표로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데도 공공극단장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선택했다.

지난 11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 내 연극을 만드는데 주력해 왔다면 이제는 연극계 전체로 시야를 확대시켜야겠다는 책임의식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두번째 동아연극상의 수상 소감이기도 했다. 서울시극단장에 오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09년부터 2년간 부산시립극단을 이끈 경험에다 마침 지난 5월 서울시극단의 '여우인간'을 연출한 것도 인연이 됐다.

김광보 단장은 서울시극단의 공공성을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공공성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서울시 산하 단체의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시민들이 양질의 작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서울시극단의 활성화는 지난 2월 임명된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꼽은 현안이었다. 그간 서울시극단의 존재 이유를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던 탓이다. 김 단장은 "서울시극단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게 최우선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워낙 침체돼 있었어요. 숨통을 틔워야죠. 그 방법이 뭘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단순하게 생각해봤어요. 좋은 연극을 만드는 것밖에 없죠. 그러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거니까요."

김광보가 생각하는 '좋은 연극'이란 "연극적인 재미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극"이다. 그는 "다소 어렵고 심각하더라도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재미'를 살리면 연극을 잘 안보는 관객도 공감대를 형성한다"며 "'프로즌'은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런데도 그토록 흥행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프로즌'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와 초연작이라는 핸디캡을 뚫고 전회 매진에 앙코르 공연까지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취임 후 첫 작품으로 그가 꺼내든 '최고의 카드'는 극작가 고연옥의 신작 '나는 형제다'(9월 4~2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이다. 김광보와 고연옥은 연극계에서 알아주는 '명콤비'다. '인류 최초의 키스' '내 이름은 강' '내 심장을 쏴라' '웃어라 무덤아' 등 고연옥이 창작·윤색·각색하고 김광보가 연출한 작품은 대부분 화제가 됐다. 고 작가는 '나는 형제다'를 탈고하자마자 김광보에게 보여줬다. 김광보는 읽자마자 마음이 동했다. 서울시극단장으로 임명되기 전이었다. 김 단장은 "글을 직접 쓰는 연출가가 아니라 내 연극은 텍스트가 많이 좌지우지한다"며 "'명콤비'라는 말이 많이 부담스럽지만 당장 내가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다"고 털어놨다.

"고 작가 희곡은 어려워요. 상징이 많죠. 그래도 자꾸 하게 되는 건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그런 작품을 선호해요. 관객이 재미 이면에 생각할 수 있는 메시지까지 얻어갔으면 해서요."

'나는 형제다'는 지난 2013년 미국 보스톤 마라톤 테러사건의 범인이었던 러시아 체첸공화국 이민가정 형제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현대사회 폭력의 본질을 파헤치는 작품이다. 하지만 사건 자체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다. 김 단장은 "그들이 왜 테러리스트가 되었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모범적으로 살려던 두 형제가 사회에서 배척당하면서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내면세계로 빠져들면서 테러리스트가 돼 갑니다. 상징과 은유가 많은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창작극, 고전명작, 어린이극을 골고루 선보일 예정이다. 3년간 선보일 작품 계획을 이미 다 세웠다. 올 겨울에는 '쉽게보는 셰익스피어'라는 타이틀로 가족극 '템페스트'를 올린다. 모두 김 단장이 직접 연출한다.
작품 수도 늘릴 예정이다.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지하에 들어서는 블랙박스 씨어터 형태의 소극장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시극단뿐만 아니라 적은 예산으로 움직이는 외부 단체들의 작품도 공연한다.

"지금은 서울시극단의 색깔을 말하기도 어려운 단계에요. 정체성을 찾는 게 우선이죠. 그게 제가 할 일이고요. 3년간 집중할 생각이에요. 바빠지겠죠. 바쁜 게 좋은 것 아닙니까."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