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공연 예술 입문장' 정동극장 이끄는 정현욱 극장장
야외공연 통해 관객과 소통
배비장전 해외공연도 성공 전통창작발견프로젝트 성과
사진=김범석기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우리 역사와 문화의 깊은 정취가 묻어난다. 그 끝자락에 붉은 벽돌의 극장 하나가 고즈넉하게 서 있다. 복잡한 도심 속 전통이 살아 숨쉬는 정동극장이다. 정동극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1908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를 복원해 1995년 개관,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정동극장은 기본적으로 한국 전통공연을 제작하고 상설 공연하는 극장이다. 묵묵히 그 역할을 수행해오긴 했지만 국내 관객에게 그 존재감은 미미했다. 해외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공연에 편중됐던 탓이다. 그런 정동극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13년 정현욱 극장장(사진)이 부임하고부터다. 야외공연을 통해 국내 관객과 만나는 자리를 늘렸고 지난해 전통예술 창작자 발굴 프로그램을 통해 발매된 '두번째 달'의 앨범은 화제를 모았다.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개별관광객(FIT) 관람 비중을 높였고, 해외에 직접 나가 한국의 전통예술을 알려 호평을 받았다. 3년 임기 중 2년여를 보낸 시점, 그 노력의 성과가 꽃피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정동극장 집무실에서 만난 정현욱 극장장은 그러나 "아직 50% 정도도 달성하지 못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사실 그가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직원들과 매달 독서모임을 통해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등 원활한 내부 소통을 이루는 것이 급선무였다.
"조직문화 체질 개선이 최우선이었어요. 정부 예산을 받아 단순히 집행하는 게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다각적으로 고민할 때였습니다. 상명하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주문했어요."
정 극장장은 전 단원 오디션제 시행을 비롯해 더욱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예술공연 공공기관으로는 이례적으로 경영·재무 컨설팅을 받아 조직개편,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극단 사다리의 대표,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공연장인 원더스페이스를 설립·운영하며 쌓은 20여년의 노하우가 정동극장에서 거침없이 발휘됐다.
정 극장장은 정동극장의 역할을 분명히 세웠다. '한국 전통공연 예술의 입문장(入門場)'으로서 대중성과 보편성을 갖춘 작품을 공연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지난해 개편한 상설공연 '배비장전'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핵심인 고위계층의 위선과 허세에 대한 풍자는 만국 공통 웃음코드다. '배비장전'은 이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지난해 중국, 올해 말레이시아 공연에 이어 지난 20일에는 대만행 비행기를 탔다. 우리 전통공연을 널리 알리기 위한 쇼케이스 형태의 공연이다. "당장 수익을 기대하는 사업이 아니에요. K팝이 표면적인 우리 문화라면 정동극장의 공연으로 우리 문화의 원류를 경험하게 해주고 이해도를 높이려는 것이죠."
정동극장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개별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데도 애쓰고 있다. 정동극장 관객 중 80%가 외국인 관광객이고, 이 중 70%가 단체관광객이다. 정 극장장은 "단체관광객은 수동적 관광의 특성상 정동극장의 공간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인지도를 높이려면 개별관광객을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동극장은 개별관광객 비중이 지난 2013년 8%에서 최근 20%로 늘었다.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관객과 더 소통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난해부터 '돌담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봄과 가을에 열리는 문화예술체험형 야외축제다. 오는 10월 열리는 축제는 '가을 읽을거리'라는 주제로 그림, 책, 음악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시민과 함께 향유한다.
이번 축제는 특히 서울시립미술관, 주한 캐나다대사관과의 협업으로 공간을 확대한다. "정동극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동길이라는 큰 공간 안에서 다른 공간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어요. 시립미술관에서 체험하는 스톤아트(stone-art), 캐나다 문학 작품 낭송 프로그램 등 다채롭게 준비했죠." 지난해에 이어 '전통창작 발견 프로젝트-100만원의 씨앗'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남은 임기는 지금까지 새롭게 시작한 것들을 담금질해야죠. 시스템만 잘 잡혀 있다면 누가 극장장으로 와도 문제없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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