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 대상 발간 일반투자자 고려 안해
일선 영업점 상담때도 '끼리가에' '마바라' 등 정체불명 단어로 설명
"'미 달러화는 혼조세', 'FY15 KOSPI 대비 7.8% Underperform', 'OO기업에 대해 목표주가 9만7000원 및 BUY 투자의견으로 커버리지를 재개하고 섹터 top pick으로 추천….'
최근 증권사 3곳에서 발간한 투자 보고서의 일부 내용이다. '혼조세'는 상황이나 형편 따위가 좋아지는 기세를 의미하는 한자어이며, 'Underperform'은 기대치를 밑돈다는 말이다. 증권사 연구원들 보고서에 자주 등장하는 '커버리지를 재개한다'는 문장은 '분석을 다시 시작했다'로 바꿀 수 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6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일별·주별·월별로 내놓는 투자 보고서가 외국어나 국적 불명의 단어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에겐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적잖다.
이는 증권사들의 보고서가 기관투자자 영업을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굳이 일반 투자자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한 대형증권사 연구원은 "어려운 전문 용어나 영어로 된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은 보고서를 읽고 주식을 사고 파는 대상을 주로 기관투자자로 간주하고 (연구원들이) 보고서를 쓰기 때문"이라며 "실상 쉬운 말로 풀어쓸 시간도 촉박할뿐더러, 이같은 분위기는 업계에 당연한 관례처럼 이어져 오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중소형주 담당 팀장은 "펀드매니저 등 기관투자자들이 내가 쓴 보고서를 근거로 대량 주문을 내야 자사에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라며 "통상 일반 투자자들을 위한 투자길라잡이 역할도 하겠지만, 증권 전문가인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자료' 명목이 더 큰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증권사 투자 보고서를 '이해하기 쉽게 쓰자'는 지적은 업계의 어제 오늘만의 얘기가 아니다.
매년 지적되고 있는 '견조(堅調)'는 '시세가 서서히 오르는 경향'으로, '모멘텀(momentum)'은 '동력', '숏포지션(short position)'은 '매도 입장' 등으로 바꿔 쓸 수 있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선 쉽게 개선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증권사 연구원들은 "보고서를 순우리말로 풀어쓰는 것이 더 어렵고, 해당 외래어가 전문 용어로 자리잡은 상태에서 번역해서 쓰다가 자칫 전달해야할 어감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또 "업계서 통용되는 단어를 안쓰고 풀어쓰면 오히려 초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같은 분위기가 영업 현장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찾는 일선 영업점에선 주로 일본어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단어들이 자주 쓰인다. '마바라'는 전문지식이 없는 투자자, '끼리가에'는 종목교체, '메사끼있게'라는 말은 '직관적으로'라는 의미를 담은 일본식 은어다.
이날 한 증권사 영업장을 찾은 50대 개인 투자자는 "투자자문을 구하기 위해 가끔 증권사 직원들과 얘기해보면 상따(상한가 따라잡기의 줄임말)나 쩜상(상한가로 개장) 등의 단어들을 사용해 이해하기 어려웠다"면서 "자칫 내용을 잘 못 이해해 투자 손실이 날 수 도 있을 것 같은 우려도 든다"고 전했다.
gms@fnnews.com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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