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가지 중화요리의 숨은 매력 알리고 싶어
짜장면·짬뽕은 한국 음식 쓰촨·베이징·광둥식 합쳐
국내서 '중국요리'로 통해 40년 경험 살려 학원 열어 음식 이면 문화 전달이 꿈
중국인이 평생 다 해보지 못하고 죽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중국을 다 여행해 보지 못하고, 한자를 다 배우지 못하고, 중국 음식을 다 먹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 음식은 약 6만 가지로 추산된다. 한 사람이 매일 세끼를 중국음식으로 먹는다고 하더라도 20년 가까이 걸리는 시간이다. 그 많은 중화요리를 배운다는 것, 그리고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어쩌면 평범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인고의 시간이었을 터다.
그렇게 중화요리를 40년간 만들어온 여경래 그랜드앰배서더 홍보각 오너 셰프(55·사진)는 9월 30일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중화요리를 대중화하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 호텔을 거치며 다양한 고급요리를 만들고, 중국 본토 요리 대회에서 수많은 상을 거머쥔 '중식 장인'의 대답으로는 뜻밖에 소박한 대답이었다.
여경래 셰프가 꿈꾸는 '대중화'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짜장면이 하루에 700만 그릇이 팔리는 '국민음식'이 됐지만, 이름의 뜻을 알고 먹거나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중화요리가 국내에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지만 음식 이면의 문화를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 시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짜장면은 '작장면(炸醬麵)'의 중국식 발음이다. 중국식 장을 기름에 튀겨 얹어 먹는 국수라는 의미다. 캐러멜이 첨가돼 단맛을 내는 한국식 짜장면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이름의 뜻을 알면 그 음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한눈에 보인다. 여 셰프의 '대중화'는 이런 맥락이다.
그의 '아는 만큼 맛있다'는 철학도 여기서 나왔다. 음식의 속내를 아는 만큼 맛을 더 음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 셰프는 "화학조미료(MSG)가 유해성으로 논란이 됐을 때, MSG를 넣지 않고 조금 감칠맛이 덜한 버섯을 우려서 조리한 적이 있다"며 "모르고 먹는다면 '밋밋하다'고만 느끼겠지만, 음식에 설명을 곁들이면 손님이 맛을 더 음미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설명의 유무는 음식을 즐기는 데도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또 '한국식 중화요리'에 대한 고민도 묻어났다. 여 셰프는 "광복 이후 시대적 상황과 함께 중화요리를 배우는 한국인이 늘어나며 국내 중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며 "짜장면, 짬뽕은 중국에는 없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는 중화요리가 없다'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는 쓰촨·베이징·광둥요리 등 구분을 하는데 한국은 이를 중국요리라고 통칭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덧붙였다. 그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중화요리가 중국음식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중식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국내에서 '중국음식' 하면 탕수육·깐풍기 등 튀김이나 기름진 음식만을 생각하는데, 의외로 중국인은 기름진 음식을 잘 안 먹는다"며 "중국인은 생선을 찌거나 새우를 삶아내는 요리를 맛있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건강을 중시하는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해외에서 수차례 행사를 진행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며 "'한국식 중화요리'를 중화권에 역수출할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식 중화요리'의 자체적인 경쟁력을 본 것이다. 실제로 한국식 '짜장면'은 중국 본토로 건너가 유행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이런 중식의 유래, 의미와 함께 문화까지 알 수 있는 학원을 만들고 싶은 소망을 전했다. "중화요리가 한국요리인지, 중국요리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음식과 함께 그 너머의 문화를 가르치는 학원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다"면서 "이는 큰 틀에서 외식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40년 대가'인 여 셰프는 후배 요리사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맛있는 음식의 동의어는 신선한 재료"라면서 "냉장고 속 6개월 묵은 재료로 솜씨 좋은 셰프가 만든 요리와 싱싱한 오징어를 데쳐서 냈을 때 어느 것이 맛있겠는가. 후자가 더 맛있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신선한 재료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실제 여 셰프는 재료 구입을 위해 일주일에 두세번 직접 가락시장을 찾는다.
또 그는 "요즘은 (후배 요리사에게) 기술을 너무 배우지 말라고 한다"며 "기술은 살아가는 수단일 뿐 최종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술을 많이 배우면 다양한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피폐해진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기술'이라는 틀에 맞추지 말고, 항상 과감한 도전을 해보라는 주문이었다.
말을 이어가는 여 셰프의 눈에서, 호텔 부주방장을 그만두고 서울 논현동 30평(99㎡) 중식집을 개업해 철가방을 들고 배달을 나서던 젊은 시절의 눈빛이 엿보였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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