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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놈이다' 주인공 주원 "스물아홉, 내 색깔 바꿔줄 바로 그놈 만났죠"

여동생 잃고 변해가는 촌놈 정우역 위해 8㎏ 불렸어요. 내가 어디까지 폭발하는지 한번 맡겨보자 했어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이 올라왔어요. 뭔가 한발 더 나아간 느낌이랄까.

영화 '그놈이다' 주인공 주원 "스물아홉, 내 색깔 바꿔줄 바로 그놈 만났죠"

강렬한 눈매와 다르게 웃음이 순수했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 속에 깊이가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 '예쁘장한' 얼굴이지만, 누구보다 남성적이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매력, 이래서 다들 '주원, 주원' 하는가 보다.

배우 주원(29·사진)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사회가 끝난 지 이틀 후, 영화 '그놈이다'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있던 때였다. 28일 개봉을 앞둔 '그놈이다'에서 그는 '장우' 역을 맡았다. 험한 생활고에 찌든 밑바닥 인생, 동생을 죽인 살인범을 찾기 위해 고통 속을 헤맨다. 게다가 '촌놈'이다. 햇빛에 그을려 얼룩덜룩한 얼굴,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에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헐렁한 바지를 걸쳤다. 그런 장우를 처음 만나는 순간, 주원은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했다.

"저한테는 정말 필요한 작품이었어요. 20대 배우는 멋있어야 하고 잘 나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불편했죠. 막연하게 스물아홉에는 내 색깔을 꼭 바꿔야겠다 생각했었어요. 장우는 원래 센 사람은 아니지만 동생 때문에 거칠어지는 역할이에요. 한번에 180도 변할 수는 없으니, 변화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캐릭터였어요."

그는 배역을 위해 체중을 8㎏ 불렸고 태닝을 했다. 스타일리스트가 걱정을 하며 가져온 허름한 옷이 제 주인을 찾을 만큼 그는 완벽한 촌놈이 됐다.

"옷을 입기 전에 그에 맞춤 외모를 일부러 만들어 놓은 거죠. 제 얼굴이 광대는 있고 턱선이 얇아 살을 빼면 좀 예쁘장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감독님께 급하게 전화해서 살을 찌우겠다 했죠. 태닝을 했고, 화장은 오히려 안했지만 주근깨를 그려 넣었어요. 외모에 신경을 더 많이 쓴 작품이에요."

주원은 사서 고생하는 배우다. 이번에도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굳이 고집해 썼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장우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정말 열심히 외국어 공부하는 수준으로 했어요. 감독님이 서울말을 써도 된다 했지만, 장우가 사투리를 안 쓰면 정말 이상할 것 같았죠. 솔직히 후회도 많이 했지만 해놓고 보니 고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놈이다'는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소재는 식상하고 구성은 헐겁다. 짜릿한 반전도 없다. 그래도 끝까지 관객을 끌고가는 건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주원은 하나뿐인 여동생을 잃은 심정을 영리하게 표현해낸다. 감정의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해 현실감을 살렸다.

"여동생의 죽음이잖아요. 연인과의 헤어짐도 아니고. 그 죽음을 감정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찍을 때가 되니 정말 끔찍하고, 슬픈데 화가 나고, 이게 꿈인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어요. 순간순간 이거구나 떠오르는 감정이 있었죠. 그동안 생각했던 걸 제쳐두고 떠오르는 감정대로 연기했죠."

유치장 철창에서 범인과 마주하는 장면은 강렬하다. 꾹꾹 눌러 삼켰던 분노와 오열이 한꺼번에 터진 장우의 처절한 얼굴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이었죠.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 대본을 읽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이 올라왔어요. 범인을 정말 죽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달려들었는데 수갑이 풀어지고 철창이 흔들릴 만큼 감정이 폭발했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운 적이 없어요. 설움인지, 분노인지 모를 어떤 감정이 터져서 컷을 하고도 한참을 울었죠.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며 그는 한 단계 성장했다.

"내가 어디까지 폭발하는지 한번 맡겨보자 했어요. 과하면 어떡하나 그런 고민을 하다가 그냥 놔버렸죠. 그게 오히려 효과적이었던 것 같아요. 끝나고 스태프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했어요. 뭔가 한 발 더 나아간 느낌이랄까."

그는 마음이 급하다. 이제 곧 서른이 된다. 내년 말에는 군대도 가야 한다.
"작품 두 개는 더 하고 가야지 않느냐" 물으니 "혹시 모르죠. 4개쯤 할지도"하며 웃는다. 지금 어느 때보다 신중히 작품을 선택하고 있다. 늘 새로운 모습에 도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연극을 할 때도 주인공보다 변태 할아버지를 더 하고 싶어 했었어요.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배우라면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그 마음을 갖고 있어요. 늘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배우, '저 사람 처음 보는데? 그 배우였어?'하는 놀라움을 끌어낼 수 있는 게 진짜 배우 아닐까요."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