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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지각한 골퍼 '갑질'에 골프장 감정노동자 속앓이

라운드 도중 일 생겼다며 고객의 다른 친구가 경기
심한 욕설은 그나마 약과 성추행은 단골 메뉴로.. 최근엔 운영에도 개입해

몰지각한 골퍼 '갑질'에 골프장 감정노동자 속앓이

#충남 소재 A골프장의 경기 도우미 K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9홀을 마친 뒤 스타트 하우스 대기실에 있다 나왔더니 백 4개 중 하나가 바뀌어 있었다. 물론 4명의 플레이어 중 한 사람은 전반 9홀에 자신이 서빙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수도권 골프장에서 일하다 이곳으로 옮긴지 한 달여 밖에 되지 않은 K씨는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아주 태연하게 "한 사람이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 간다고 해서 다른 사람 오라고 했어. 어차피 18홀 그린피 내는데 상관 없잖아"라며 "네가 뭔데 참견이냐"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섞어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육상 릴레이에서나 볼 수 있는 이른바 '바통 터치'를 서슴치 않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용은 이랬다. 동반자 중 한 명이 갑자기 일이 생겨 라운드 도중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골프장 인근에 살고 있던 친구는 골프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9홀을 마치고 들어온 친구 백과 자신의 백을 바꾼 것. 황당한 일을 처음 접한 경기 도우미는 경기과에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리고 잠시 뒤 골프장 총지배인이 현장에 나왔다. 총지배인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그 행위 자체가 불가하다고 고객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전임 총지배인 때는 아무 문제도 아닌 일을 왜 걸고 넘어지냐"고 오히려 역정을 냈다. 그들은 부임한지 수 개월 밖에 되지 않은 총지배인에게도 험악한 말을 내뱉기가 마찬가지였다.

대표적 서비스산업인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감정노동자'에 대한 일부 고객의 '갑질'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심한 욕설은 그나마 약과다. 인격적 모독, 성추행은 갑질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고 최근에는 오지랖 넓게 운영에도 개입하려고 한다. 이런 갑질은 수도권 골프장보다는 자신들의 말빨이 쉽게 통하는 지방 소재 골프장일수록 더욱 심하다.

전남 소재 B골프장 C대표는 "'우리가 뚤뚤 뭉치면 당신들 영업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을텐데'라며 협박을 하는데 어쩔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는 특히 안개나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는 등 기상이 좋지 않는 경우, 갑질은 더욱 심해진다고 말한다. 짙은 안개로 정상적인 라운드가 불가능해지면 티오프 시간을 무시한 채 "안개가 걷히면 나가겠다"고 우기는 것은 다반사라는 것. 안된다고 하면 "잠도 못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먼길 달려 왔으니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라"고 억지를 부린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날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라운드가 가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스타트홀에서 티샷을 하지 않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끈다. 그것도 부족해 티업 시간에 맞춰 스타트홀로 몰린 고객들을 상대로 선동까지 한다. 물론 이때 마샬이 티업을 종용하면 어김없이 "사장 나오라고 해"라며 욕설부터 나온다. 자신의 티타임에 맞춰 출발한 뒤 기상이 악화되면 라운드를 그만 둬도 손해볼 게 없는데도 말이다. 최근 들어 많은 골프장들이 기상이 좋지 않은 경우 라운드한 홀에 따라 요금을 내는 '홀별 정산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부 고객의 갑질로 인한 속앓이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골프장 종사자일수록 더욱 심하다. 개인이 운영하는 골프장과 달리 대기업 운영 골프장에서는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잡음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종사자들에게 웬만하면 참으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충남 A골프장의 총지배인은 "갑질 고객은 어떤 면에서 그러한 대기업의 생리를 이용하는 지도 모른다"며 "마음 같아선 옷을 벗을 각오로 대처하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골프장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갑질 행태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골프장 공급 과잉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한다. 많은 골프장이 생겨나면서 제살 깎아먹기식 과열경쟁이 불가피해져 고객이 '슈퍼갑'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진상' 고객이라고 해도 이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되면 골프장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고, 그렇게 되면 내방객이 대거 빠져나갈 공산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고객은 왕'이라는 지나친 고객중심주의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또 돈이면 다된다는 이른바 '천민 자본주의'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는 원인의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