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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내 익명게시판, 익명 보장 안 된다

삼성, SK 등 주요 대기업들이 사내 익명게시판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로 '익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익명게시판이 없는 기업 직원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이용해 회사와 관련된 익명글을 작성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사내 인사팀의 모니터링이 진행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운영 중인 사내 익명게시판이 완전한 익명을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자 대부분이 '마음만 먹으면 누가 썼는지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 기술적으로도 서버 추적 등을 통해 작성자를 알아낼 수 있다.

삼성 계열사에 다니다 현재 퇴사한 A씨(28)는 "익명게시판이라고 하지만 인사팀이 다 안다는 소문이 돌아서 직원들이 솔직한 얘기를 쓰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소속을 밝히기 꺼린 직장인 B씨(33)는 "익명게시판에 쓴 글이 화제가 된 후 부서 책임자로부터 '요즘 무슨 일 있나'라는 지적을 받았다"며 "이후로는 글을 쓸때 자체적으로 수위 조절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의 경우 그룹 내 커뮤니티에 댓글상담실, 이슈토론방 등을 익명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글은 익명, 댓글은 실명으로 달 수 있는 게시판도 따로 있다. 댓글에 대한 추천·반대 기능도 있어서 의견 개진이 활발한 편에 속한다.

SK그룹은 글을 작성할 때마다 작성자가 별명을 써 넣는 형식으로 익명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효성의 '와글와글' 게시판에는 필명으로 글을 쓸 수 있으며 최근 사내 주요 이슈부터 개인 관심사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반면, 한화와 LG, GS그룹 등은 익명게시판 자체가 없다.

한화 계열사 모 관계자는 "사내 익명게시판은 악성루머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없는 것이 나은 편"이라며 "익명이 보장된다고 하기도 어렵고 로그(방문기록)가 남는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더구나 회사 서버를 통해 접속한다면 익명은 말 뿐"이라고 밝혔다. 삼성에서 한화로 편입된 계열사의 경우 삼성 시절에 있던 익명게시판에서 인수합병 과정 당시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비방, 노사·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글이 많아지면서 실명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블라인드'처럼 회사 이메일을 인증해야만 가입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이 주목받는 것도 익명게시판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모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블라인드앱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외부 서버라서 누가 썼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을 뿐이지 어떤 내용이 오가는지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살피는 편"이라고 말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