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인상 초읽기.. 갈림길에 선 한국 통화정책
한·미 통화정책 엇박자 한은, 오래 버티기 힘들어
외환·단기외채 양호해도 예상 못한 위기 맞을수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 연 1.50%로 6개월째 동결했다. 사진=박범준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 여부 결정을 1주일 앞둔 10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50%에서 동결했다. 지난 7월부터 6개월 연속 동결이다.
오는 16일(현지시간) 연준은 우리나라 한은의 금융통화위원회 격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연방기금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한다.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부터 0∼0.25%의 제로 금리를 유지해왔다. 시장에선 연준이 3개월마다 0.25%포인트씩 순차적으로 1년에 약 1%포인트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 통화정책의 흐름이 7년여 만에 바뀌는 대전환기에 직면한 만큼 한은으로서도 그 여파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한은이 이와 동떨어져 독자적으로 국내 금리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게 더 현실적인 이유다. 일반적으로 자본유출의 경계선은 한.미 간 금리차 1.5%포인트로 본다.
■韓 완화적 기조 언제까지 가능한가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방향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 대비한 이른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해놓고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시중 유동성을 여유롭게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금융시장에선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경험을 떠올리며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대형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른바 '블랙스완(검은백조)'의 공포를 되새김질하고 있다. 미국 금리인상이 이미 예고된 '빅 이벤트'이기 때문에 그 대비책은 어느 정도 세웠지만 진짜 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은 중국 경기둔화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 테러사건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부상, 산유국발 경제위기 가능성 등 다양한 대외변수가 혼재돼 있다.
이 총재는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이 곧바로 한은의 금리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의 금리인상은 시장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고 속도도 완만할 것으로 보여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가 대응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기준으로 한·미 간 10년물 국채금리 차는 0.007%포인트로 사실상 같은 상태다. 한국 3년물과 미국 2년물 국채 금리 역시 0.843%포인트다.
과거 200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미국 금리 방향은 크게 두번 바뀌었다. 2004년 7월(인상기)과 2007년 9월(인하기)이다. 한국 금리가 미국 금리 방향과 동조화되기까지는 각각 1년3개월, 1년1개월이 걸렸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한은이 금리정책을 활용해 국내 경기부양이나 자금 유출입을 조절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면서 "적어도 앞으로 12개월간은 정책금리 동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은의 완화적 통화 기조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지만 동시에 국내 경기부진이 심화될 경우 미국 금리 흐름에서 이탈해 추가적인 금리인하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 안팎에선 벌써부터 내년 초 '소비절벽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9일 발간한 월간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최근의 소비 개선세에도 불구하고 수출부진으로 생산과 투자가 지체되고 있다"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을 경계했다. 내년 상반기 본격적인 미국 금리인상 랠리 속에서 국내 경기가 전망치를 크게 하회할 경우 한은으로선 '인하'와 '인상'의 갈림길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韓 대비책 '청신호'라지만…'
한은과 정부 당국은 한국 경제가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충격파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과거 1997년, 2008년 두 차례 위기 때와 비교해 △단기외채 비중 △경상수지 △외환보유액 등 3대 대외건전성 지표가 월등히 개선됐다는 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위기관리를 잘못하면 달러를 쌓아놓고도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순대외채권 규모(3100억달러)의 이면을 살펴봐야 한다. 한은의 외환보유액 약 3600억달러를 제외하면 오히려 500억달러 적자다.
숙명여대 신세돈 교수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외국에 진 빚은 되레 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순채권국이라는 것만으로 반드시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위기 시 당장 끌어다 쓸 수 있는 외화자산이 얼마나 되는지도 관건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11월 말 기준.3685억달러)는 세계 7위 수준이다. 외환위기 홍역을 치른 1997년 204억달러보다 18배 이상 몸집을 불렸다. 문제는 유동화다.
외환보유액 중 유동성 자산(미국 달러화 단기국채 및 단기예치)은 4.3%에 불과하고, 약 80.5%가 미국 등의 중장기 국채·정부기관채 등에 투자돼 있다.
또 다른 대외건전성 지표인 단기외채는 지난 3.4분기 기준 1196억달러로 전분기에 비해 56억달러 줄었다. 단기외채 감소는 대외 건전성이 개선됐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연내 미국 금리인상을 앞두고 외국인투자가들의 자금회수와 국내 기관들의 신규 차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로 설명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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