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업 든든한 지원 있지만 올겨울 3개 구단 행보 특이
FA시장 과열양상 사그라들듯
야구에서 '파이어 세일(fire sale)'은 선수들을 몽땅 내다파는 것을 의미한다. 몸값 비싼 선수를 중심으로 한 대량 방출이다.
대표적인 것이 1997년 겨울 마이애미 말린스의 파이어 세일이었다. 말린스는 1993년에 창단한 팀이다. 화끈하게 투자해서 4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겨울 마이애미는 게리 셰필드, 케빈 브라운, 모이제스 알루 등 간판선수들을 싹 다 팔았다. 이듬해 마이애미는 108패(52승)를 기록했다. 우승한 다음해 100패 이상을 기록한 사상 첫번째 팀이었다.
메이저리그 팀들은 모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홀로 정글 생존법을 익혀야 한다. 마이애미 같이 연고지역이 약한 구단은 치고 빠지는 전술을 쓸 수밖에 없다. 적자를 메워줄 모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같이 알짜 프랜차이즈를 가진 구단이 아니고선 히트 앤드 런만이 살길이다.
국내 프로야구는 사정이 다르다. 넥센을 빼고는 모두 든든한 모기업의 우산 아래 있다. 그동안 우승 다음 파이어 세일이 없었던 이유다. 가난에 못이겨 선수를 슬쩍 내다 판 씁쓸한 기억은 있었지만.
그런 점에서 올 겨울 두산, 삼성, SK가 보여주는 행보는 특이하다. 한국형 파이어 세일이라고 부를 만하다. 두산은 3명의 FA(자유계약선수) 누구와도 아직 계약하지 못했다. 김현수는 사실상 메이저리그 행이 결정된 상태다. 돌아와도 두산이 잡을지는 의문이다. 장원준을 86억원에 잡아 온 지난해 기세와는 사뭇 달라졌다.
삼성은 박석민을 NC로 떠나보냈다. 지난해 배영수, 권혁(이상 한화)을 내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지난해까진 꼭 필요한 선수는 반드시 잡았다.
이제 삼성은 더 이상 한국 프로야구의 '큰 손'이 아니다. 2004년 현대에서 60억원에 심정수를 데려올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마저 든다.
삼성의 변화는 다른 종목에서도 감지된다. 지난 2월 10년간 이어져온 프리미어리그 첼시와의 후원관계를 청산했다. 3월에는 이건희 회장이 애지중지하던 럭비단을 해체했다. 테니스단도 없앴다. 최근엔 야구단을 제일기획으로 넘겼다. 실업 럭비는 지난 15일 현대 글로비스의 창단으로 간신히 고사 위기에서 빠져 나왔다.
삼성과 현대는 1979년 헬기까지 동원해 스카우트 싸움을 벌였다. 고려대 졸업반인 이동균은 당초 삼성에 입단할 예정이었다. 현대는 삼성의 훈련장인 제주도에 헬기를 띄워 이동균을 납치했다.
삼성은 이동균 재납치 계획을 세우고 현대의 숙소에 가짜 요리사를 투입하기도 했다. 그런 박 터지는 싸움은 이제 전설로 남게 됐다.
SK는 6명의 자체 FA 가운데 3명만 잔류시켰다. 남은 3명을 위해 SK는 총 46억원을 지불할 예정이다. 떠난 FA 3인방이 받는 액수는 154억원. 떠난 자와 남은 자의 몸값 차액이 100억원이 넘는다.
최근 몇 년간 한화와 함께 FA 시장서 큰 손 노릇을 해온 KIA의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외부 FA는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다.
이범호를 붙드는데 36억원을 썼을 뿐이다. 프로야구 FA 시장 과열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보인다. 시장이 스스로 냉각제를 뿌리고 있다. texan50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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