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

韓 디레버리징 시대 도래

미국 제로 금리 시대의 종언으로 한국의 저금리 기조 역시 향후 수개월 내에 한계 시점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경기 회복 속도가 고려돼야 하지만 사실상 그 시한은 절대적으로 미국 금리 인상 속도에 달려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금리 인상으로 인한 충격파를 흡수하기 위해선 가계부채·기업부채·외채 등 3대 뇌관을 중심으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실시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년여만에 제로 금리(0~0.25%)종언을 발표한 17일 오전 정부와 한국은행은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미국 금리인상에도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일단 시장 안정에 주력했다. 정부는 미국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급격

한 자본유출입을 관리하기 위해 이번주 중 외환건전성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현행 자본이동제한 조치인 거시건전성 제도를 개편할 계획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융시장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현재의 완화적 통화정책과 관련해선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이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돼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관건인 셈이다. 과거 미국이 금리 방향을 바꾼 2004년과 2007년, 한은이 미국 금리 방향과 동조화 되기까지는 각각 1년 3개월, 1년 1개월이 걸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위원들은 내년말 장기 정책금리가 1.4%, 2017년 2.4%, 2018년말 3.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미간 금리차를 최소 1.0%포인트로 둔다고 해도 늦어도 2017년 초 한은의 금리는 2.5%(현재 1.5%)까지 올려야 한다. 한국도 저금리 시대 종언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가계·기업부채 관리 '뇌관'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는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들이 급격한 디레버리징으로 가계와 기업의 부채를 상당부부분 떨궈낸 것과 달리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의 타이밍만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엔 경기살리기를 위해 되레 빚을 늘리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1일 한은 주최로 개최한 국제행사에서 "정부 당국이 정책수단을 활용해 가계와 기업의 지나친 차입투자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면서 '빚 내기' 자제를 촉구했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 한은의 역설이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문제는 점진적으로 부채 증가를 억제하면서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신성환 원장은 "급격한 가계부채 억제책은 저소득층에 충격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완급을 조절하면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계부채와 달리 금융권에 즉각적이고 대규모 충격을 안길 수 있는 한계기업 문제는 속도를 내야하는 상황이다. 한계기업은 최근 3년간 영업이익으로도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을 말한다. 외부감사를 받는 비금융법인 중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12.8%에서 지난해 말 15.2%로 급격히 늘었다. 장기침체에 빠진 조선, 해운, 철강, 건설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부실이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시닷트 티와리 국제통화기금(IMF)전략 및 정책리뷰국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부채, 특히 기업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최근 이들 국가의 높은 레버리지가 금융안정의 리스크로 부각했다"고 말했다.

■디레버리징 관건은 통화정책

디레버리징의 가장 즉각적이며 효과적인 수단은 한은의 금리 인상이다. 그러나 섣부른 금리인상은 경기회복을 위축시키고, 가계와 기업에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로선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현재로선 미국 금리 인상 영향을 주시하면서 국내 경기 회복속도를 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디레버리징에 대해 정부의 입장은 신중하다. 오히려 내년부터는 실질성장률에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한 경상성장률을 관리 지표로 포함해 디플레이션 차단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부양과 구조조정의 딜레마에 봉착한 상황이다. 주형환 차관은 "성장을 위해 레버리지를 키우면 경제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가 상승할 수 있다"며 "반대로 리스크 관리를 위해 디레버리징을 강조할 경우 경기 둔화로 부채 부담이 증가하고 외국인 자금 유출을 촉발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채관리…거시건전성 제도 재검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외채관리는 여전히 트라우마의 영역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11월말 기준·3685억 달러)는 세계 7위 수준이다. 외환위기 홍역을 치른 1997년(204억달러)보다 18배 이상 몸집을 불렸다. 문제는 유동화다. 외환보유액 중 유동성 자산(미 달러화 단기국채 및 단기예치)은 4.3%에 불과하고, 약 80.5%가 미국 등의 중장기 국채·정부기관채 등에 투자돼 있어 위기시 즉각 가용할 수 있는 달러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향후 장기간에 걸친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비해 자본유출 문제 역시 주시해야 한다. 거시건전성 제도 개편 논의에 대해 주 차관은 "그동안 거시건전성 3종세트가 자본 유입 억제 쪽으로 운영된 면이 있지만 유출 억제 등을 포함해 상황 변화에 맞춰 고칠 것"이라며 "TF, 관련기관, 전문가들이 면밀히 논의해 내년 상반기까지 변화 방향, 수준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자본유출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키우는데 초점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김용훈 박소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