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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인구절벽 위기 이렇게 극복하자](1부-5)일할 사람이 없다

중기 제조업 젊은 기술자 실종.. 임금·환경 개선돼야 수혈 가능
조선 생산직 평균 44.7세.. 10년전보다 3세 이상 높아
숙련된 기술 물려받을 20대 근로자 발길 끊겨
일부 제조업체 존립 위협

#. 국내 굴지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는 김모씨(52)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닷바람을 맞은 베테랑 용접공이다. 그런 그에게 몇년 전부터 큰 고민이 생겼다. 조선소 일은 도제(徒弟) 성격이 큰데 용접 일을 물려줄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해서다. 그는 "사회에서는 청년 취업난 때문에 난리지만 정작 조선소는 젊은 층이 부족하다"며 "은퇴 전에 서둘러 기술 전수를 해야 하는데 해가 갈수록 안타깝다"고 전했다.

#. "10명이던 기술자가 4명으로 줄었는데 그나마 모두 50세가 넘은 중년뿐입니다." 부산에 있는 자동차부품 도금업체를 30년째 운영 중인 B대표에게 채용 현황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러나 20~30대 인력 채용은 사실상 포기했다. 여러번 채용 공고를 내봤지만 오겠다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B대표는 "당분간 기존 기술자와 외국인 근로자들로 공장은 돌아가겠지만 향후 인력 등의 문제로 운영이 어려워지면 사업을 접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년기획 인구절벽 위기 이렇게 극복하자](1부-5)일할 사람이 없다

산업 현장에 일할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청년 구직자와 기업 간 '일자리 미스 매칭' 현상으로 산업 현장의 고령화는 가속화되는데 생산 가능 인구도 줄어들고있어서다.

생산성 하락이 우려되지만 기업들은 '젊은 피' 수혈에 어려움을 겪는 등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관련 산업 경쟁력은 물론 우리 경제 성장 잠재력까지 약화되는'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선·철강업 "젊은피 찾습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저출산·고령화 추세로 '15년 후 우리나라 연간 경제 성장률이 1%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KDI는 고령화 영향을 감안해 우리 경제의 성장 전망치도 3.0% 내외 수준에서 2020년대에는 2% 초반대로, 2030년대에는 1%대로 줄어들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 같은 흐름에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조선·철강 등 관련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젊은 노동력이 필요한 산업군이지만 생산 가능 인력은 줄어들고, 현장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높아지고 있어서다. 중국의 영향으로 업황이 부진한데 근로자의 고령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어 기업 생산성은 더 떨어질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이미 국내 조선업계 생산직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높아지고 있다. 한국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한국 조선 빅3 기업(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의 생산직 평균 연령은 44.7세(2015년 6월 기준)로 이는 10년 전(2005년 41.7세)보다 3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평균 연령이 50세인 일본 조선업계에 비하면 아직 낮은 편이지만 고령화의 진행 속도는 빨라 '심각한 수준'이란게 업계의 설명이다.

문제는 관련 기업 대부분이 경영 악화에 시달리는 가운데 신규 채용도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협회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수년 내 특정 기술 전수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조선업종 내에서도 도장.용접 등 난이도가 높고 힘든 '3D' 파트의 젊은 일손이 특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이 최대 화두인 조선.철강 업종이 현재는 어떻게든 조직슬림화를 단행하고 있지만 향후 세대 교체 실패에 따른 더 큰 손실을 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산업 현장의 고령화는 생산비 대비 인건비가 오른다는 점에서 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희준 서울대 교수가 한 제조기업을 상대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정년이 60세로 연장될 경우 기업 간부 직급의 비율'은 2012년 49.1%(부장 7.2%, 차장 14.2%, 과장 27.7%)에서 2025년에는 64.6%(부장 23.3%, 차장 19.1%, 과장 23.2%)까지 늘어날 것으로 나타났다. 즉, 차장·부장 수가 대리·사원(34%)수를 넘어서는 '관리자 천하'가 될 것이란 의미다. 이 같은 고위 직급 증가는 조직의 활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장 기술직 40~50대가 막내"

중소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의 핵심공정을 담당해온 뿌리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과 '고령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생산 가능 인력까지 줄어들면서 영세하거나 임금이 낮은 사업장일수록 젊은 인력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실제로 주조·금형·소성가공·열처리·용접 등 뿌리기업 종사자 10명 중 6명은 4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뿌리 기업의 종사자수는 전체 제조업 종사자(380만명)의 12.6%를 차지했다. 연령별 종사자는 40대가 32.8%, 50대가 24.1%로 40대 이상 비중이 57.9%에 달했다. 반면 20대 종사자 비중은 11.7%에 불과했다.

부족한 인력은 외국인 노동자로 대신하고 있지만 뿌리기업에 재직하는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는 최장 4년 10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중소기업은 숙련된 기술자의 노하우나 산업 현장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전수하지 못한 채 사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C대표는 "근무 조건이나 환경 등을 이유로 제조업을 기피하는 데다 생산 가능 인력까지 줄어들면서 산업 현장에서 '허리' 역할을 할 20~30대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며 "숙련된 기술자들이 퇴직할 땐 회사 존립마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종사자들은 '납품 단가 현실화' 등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도금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대기업의 실적 악화로 인한 손실이 납품업체의 단가 인하 요청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중소 제조기업 기술자 연봉은 대기업 평균 연봉의 30%에 불과한데 자금난에 시달리다보니 임금이나 복지에 신경쓰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금이나 근로 환경이 개선되면 중소기업도 생산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승훈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경제 전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 기업의 고령화가 더욱 심각하다는 사실은 경제와 산업의 활력과 관련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조직의 노화를 막지 못해 혁신과 변화의 의지를 잃게 된다면 더 이상 설 곳이 없다"고 강조했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