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로자 실제 은퇴는 70세 양질의 고령자 일자리 만들자
50대 중반에 회사 그만두고 70세 넘어서까지 직장 찾아
이미 '생산가담인구' 활동
노년·청년 일자리 안 겹쳐
경험 살린 직업 발굴 시급
#. 첫 출근 날 같이 입사한 20대 인턴이 책상에 아이패드 등 첨단 정보기술(IT) 기기를 준비하는 동안 70대 할아버지는 몇 십년 된 007가방에서 수첩, 볼펜, 달력, 안경 같은 옛 물건들을 꺼내서 가지런히 놓아둔다. 창업 1년을 갓 넘긴 IT회사에서 이 할아버지는 직원들에게 일은 물론 연애상담까지 해주며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정신적 지주'로 떠오른다.
지난해 화제가 된 영화 '인턴'의 줄거리다. 인턴이지만 풍부한 경험으로 회사에 보탬이 되는 70대 어른의 모습을 다뤄 흥행 반열에 올랐다.
우리에게 '일하는 어른'은 낯설지 않다. 더 이상 복지 수혜층이나 피부양자로서 고령층이 아닌 능동적인 노인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인, 나이를 높여라
11일 미래에셋퇴직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실제 평균 퇴직연령은 53세다. 법적 정년퇴직 연령인 60세를 채우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의 실제 은퇴연령은 70세가량이다. 5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70세까지는 일한다는 의미다. 일하고 싶은 나이는 이보다 높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일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이 희망하는 은퇴연령은 평균 74.42세로 나타났다.
이는 공식 지표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0~64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9.8%에 이른다. 이 비율은 2005년 54.5%에서 10년 만에 60%대를 바라보고 있다. 65세 이상은 31.9%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라는 통계적 개념과 별개로 고령층은 이미 '생산가담인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인식이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이훈희 부연구위원은 "'고령층=복지수혜층'이라는 인식을 '고령층=일하는 인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고령층 노동시장의 경우 공급과 더불어 수요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그러나 "연공서열제, 청년층 일자리와 경합 등의 이유로 고령층이 일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프레임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복지수혜자로서의 고령층은 통계학적 나이로 인해 발생한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의 기준은 '65세 이상'이다.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와 기준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실제 은퇴연령보다도 5세가량 낮다. 이는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 고령층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된다.
지난해 대한노인회에서는 노인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높이자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통계청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있어 우리 상황에 맞는 노인 개념을 정립하자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층·청년층 일자리 안 겹친다"
고령층 일자리를 얘기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것이 청년세대와의 갈등 논란이다. "청년일자리도 없는데 노인일자리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임금피크제다. 고령층 연봉을 깎아 청년고용을 늘린다는 구조다.
이에 대해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기본적으로 임금피크제는 노년층과 청년층의 경합을 전제로 하는데, 고령층 일자리는 고령층끼리의 경합일 뿐 청년의 영역과 겹치지 않는다"면서 "세대 간 경쟁이 아닌데도 이렇게 프레임화하는 것은 포장지로 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보다는 노년층 일자리 확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고령층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높지만 일자리 질과 비례하진 않는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60세 이상은 연간 99만명이 창업하지만 81만명이 폐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년 후 생존율도 53.5%로 열악하다. 또 400만명의 개인사업자 중 50% 이상은 월소득 100만원 미만이다.
이훈희 부연구위원은 "모두 생계비 마련과 용돈 마련이라는 응답비율이 높다"면서 "은퇴자들이 개인 생계형 창업에 의존하는 경우 진입장벽이 낮고 과잉경쟁인 업종에 몰려 위험하다"고 말했다.
양질의 고령층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경제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과거 직업과 연계해 전문성을 살리는 직업의 발굴이 시급하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고위직, 준전문가, 사무직에서 근무했더라도 은퇴 후에는 기능직이 32%, 서비스·판매직이 23.3%, 단순노무직이 19.1%순으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지은정 부연구위원은 "앞으로는 생애 주된 경력과 유사한 업무를 통해 경륜, 기술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고령자에 적합한 일자리 발굴에 더 노력해야 한다"면서 "고령자들이 삶의 보람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소득도 얻을 수 있는 생애 경력과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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