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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란에 가면 봄 한바구니

오색빛깔 뒤집어 쓴 성남 모란시장.. 도심 속 5일장 꽃구경, 애견구경, 사람구경 '재미 쏠쏠'

지금, 모란에 가면 봄 한바구니
【 성남(경기도)=이정호 선임기자】예쁜 애완견을 사고 파는 곳….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모란시장은 수도권 최대 규모의 오일장이다. 장날이면 중원구 둔촌대로 79 일대 1만1000여㎡의 대원천 복개지 위에 형형색색 파라솔이 동서로 길이 350m, 폭 30m로 펼쳐진다.

모란장은 4일과 9일이 들어가는 날인 매월 4, 9, 14, 19, 24, 29일에 장이 선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리며 평일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아무 때나 가면 안된다. 모란장은 도심 속 민속장터여서 사람들에게 향수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비가 오는 등 궂은 날이 아니고 장날이 주말과 겹치게 되면 하루에 10만명의 사람이 몰려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북적댄다. '없는 물건이 없는' 모란시장에서 상품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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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드러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난초

■14개 부서로 정확히 구획된 모란장

지하철 분당선 모란역 5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각종 점포와 노점상들로 시끌벅적하다. 5번 출구에서 분당 방향으로 3분쯤 걸어가면 수도권 최대 규모의 오일장인 모란시장이 나온다.

화사하게 핀 꽃들, 동양란 서양란과 선인장 화분들이 맨 먼저 반갑게 인사한다. 모란장은 14개 부서로 정확히 구획돼 있어 장보기가 편하다. 장터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화훼부를 시작으로 잡곡, 약초, 의류, 신발, 잡화, 생선, 야채, 음식, 민물 활어, 고추, 애견, 가금부 순으로 4∼5개의 길이 동서로 길게 이어진다. 장터 입구에서 보면 우측에 건강원 등 상설점포들로 길게 구성된 기타부가 따로 있다.

잡곡부에서는 쌀, 보리, 콩 등 여러가지 잡곡이 취급되며 그 다음에 배치돼 있는 약초부에서는 굼벵이, 지네, 인삼 등 온갖 약재가 거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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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칼국수 등 먹거리를 파는 음식점

■소주 한 병 값만 내면 안주 무한리필

금강산도 식후경. 장터에 와서 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음식부에는 손칼국수, 팥칼국수, 잔치국수, 만두칼국수 등 분식류와 호박죽, 팥죽, 순대국밥, 돼지껍데기 등 다양한 먹거리를 갖추고 있다.

특히 손님들 앞에서 직접 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하고 밀어낸 후 칼로 썰어 만드는 5000원짜리 손칼국수는 최고 인기 음식이다. 청양고추와 양념장의 칼칼한 국물맛을 자랑하는데 음식점 40여곳 대부분이 손칼국수를 판다. 손칼국수 위에 김가루를 뿌리는 등 모양새도 비슷비슷하다.

또한 소주 한 병 값 6000원만 내면 안주가 무한리필 되는 술집도 있다. 커다란 식탁 가운데에 철판을 놓고 돼지의 각종 부산물을 한가득 굽고 있어 손님들이 술을 마시면서 안주를 마음껏 집어먹을 수 있다.

손석철 모란민속장 집행위원장은 "음식점 주인이 돼지 부산물을 도매시장에서 싸게 구입해 안주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 가격에 박리다매로 팔 수 있다"고 귀띔했다.

모란민속장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고추 장터는 마늘과 함께 한 블록을 이루고 있다. 모란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애견부에서는 애완견과 특수견.잡견이 주고 거래되고 있는데 가금부와 함께 장터의 후미에 배치 배치된 까닭은 냄새와 위생적인 면 등을 고려한 때문이다.

한편, 모란장 주변 골목에서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손님을 부른다. 40곳이 넘는 기름 가게들이 몰려 있는데 참기름, 들기름뿐 아니라 고추씨기름, 살구씨기름, 홍화씨기름 등 온갖 종류의 기름을 직접 짜 판매한다. 예전에는 국내산 참깨로 참기름을 짰지만 지금은 대부분 중국산 참깨를 쓴다. 참기름 100병 가운데 가격이 3배인 국내산 참기름은 고작 1~2병 정도 나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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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완견들이 따뜻한 봄햇살에 졸고 있다.

■모란시장의 역사 1962년부터

모란장이 한번 서면 970개 점포가 펼쳐진다. 모란민속장상인회에 등록된 955명을 포함해 장터에 자리를 가진 상인의 수만 1000여명에 이른다. 자리를 갖지 못한 노점상들과 자신의 생산물을 팔러온 농민들을 포함해 대략 1500여명 정도의 상인이 장터에 나오는 것으로 추산된다.

장터에 한번 자리를 잡으면 항상 그자리에서 장사를 하게 된다. 1988년부터 어김없이 잡곡부 귀퉁이에서 곡식을 맷돌에 갈아 팔았다는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상인도 있다.

모란시장의 역사는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란시장은 홀어머니를 평양에 두고 월남한 김창숙이란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군에 입대한 뒤 한국전쟁을 거쳐 대령으로 예편한 그는 황무지였던 지금의 모란시장 주변을 개간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자 개간지에 어머니가 살고 있는 평양 모란봉을 상징하는 '모란'이라는 지명을 붙이게 됐다. 그후 생활 문제가 대두되면서 오일장을 열게 되는데 이것이 모란장의 시초라고 한다.

1970년 초부터 서울의 도시 재개발로 인구가 성남시로 모여들어 수진교와 대원천에 이르는 길가에 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1974년에 본격적으로 개장됐다.

모란장이 유명해진 것은 1980년대부터다. 도심 속 오일장이라는 특수성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한때 상인의 수가 2000명을 웃돌고, 하루 유동인구가 15만명에 육박했다. 장터가 비좁아지자 1990년 성남동 대원천 하류 지역인 지금의 장터로 이전한 것이다.

모란민속장 유점수 상인회장은 "대형 백화점과 할인마트들이 속속 들어서는 가운데 전통 오일장으로서의 맥을 이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모란민속장날을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고객님들 덕분"이라며 "올해 말 성남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통시장 이전 확장사업이 완료되면 고객들의 장보기 만족도가 높아짐은 물론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jungle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