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만 팠더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운이 좋았어요."
35년 현장을 지키다 지난달 말 기술직 상무에 오른 장천순 두산중공업 터빈2공장장(55·사진). 그의 소감은 담담했다.
그는 두산중공업이 기술직원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추진 중인 '성장경로 투트랙'에 따라 임원이 된 두 번째 사례다. 2년 전 이상원 부장이 상무로 승진, 기술직 임원 시대를 열었고 그가 그 바통을 2년 만에 이었다.
두산중공업은 2011년부터 '현장 매니지먼트 트랙'을 선택한 직원은 현장 관리자를 거쳐 임원 승진 기회를, '기술전문가 트랙'을 택한 직원은 엑스퍼트 과정을 거쳐 '마이스터'가 될 수 있게 했다. 마이스터는 지금까지 10명이 배출됐다. 두산중 기술직은 전체 3000명가량 된다.
35년 전 청주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아무 연고도 없던 경남 창원에 발을 디딘 것은 "그곳에 앞으로 첨단기술이 꽃필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두산중공업의 모태가 된 현대양행 마지막 시절 입사했다. 1970년대 중반 정부 중공업 육성정책으로 현대양행은 거대한 기계공업단지로 변모했고, 1980년 사명이 한국중공업으로 바뀐 뒤 2000년 두산중공업에 인수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공고를 갓 졸업한 그가 투입된 곳은 공장 최말단 선반직이었다. "공작기계의 가장 기본이 선반이다. 이걸 모르면 기계 일을 할 수가 없다. 선반공만 10년 했다. 그땐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 10년 뒤 말단을 벗어났지만, 선반 일만 20년 가까이 했다"는 게 그의 회상이다.
생산직에서도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일하는 게 쉽지는 않다. 입사 동기가 200명 넘었지만 현재 남은 이는 10명 정도다. 두산중공업의 시작과 성장을 현장에서 지켜본 이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는 회사가 납품한 기자재들로 설비들이 성공적인 시운전을 끝냈을 때 매번 감격한다.
대학을 가지 못한 것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내다보니 이 길이 더 나았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는 "대학 못가 가장 힘들었던 건 영문자료를 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도통 해석이 안될 때 답답하고 억울했다. 하지만 현장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 상황이다. 기계 옆에서 살다보면 그 사람이 공학자보다 더 많이 알게 된다. 대학이 아니어도 내 길이 있구나, 이 판단을 일찍 했다"고 기억한다.
"맡은 분야 최고 기술자가 돼라." 이 말은 그가 후배들에게 늘 하는 조언이다. "현장에선 일이 잘 안되면 재미가 없어요. 누가 뭘 물어도 답할 수 있어야 신이 납니다. 실력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는 곳이 기술의 세계예요." 그는 고객사들이 부품을 주문하려고 회사 앞에 줄을 설 정도록 성능 좋은 제품 만드는 게 남은 꿈이라고 했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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