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린 잔더 '1:5 노란 외투'
199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소형 조각트리엔날레에서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독일의 개념미술가 카린 잔더의 조각이었다. 행사를 기획한 큐레이터 베르너 마이어의 미니어처를 아크릴로 작고 정교하게 제작한 것이다. 미니어처 형태의 작은 조각 작품들은 많지만, 잔더의 작품은 작품의 제작과정과 정교한 세부표현으로 이목을 끌었다. 잔더는 작품 제작에 3D 보디스캐너를 도입했다. 스캐너는 약 20초간 신체표면의 모든 정보를 읽고, 정보는 STL파일로 변형돼 압출기에 전송된다. 압출기는 30~40차례 인물조각의 레이어를 만들고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작된 후 테크니션에 의해 에어브러시 채색이 완료된다.
카린 잔더는 이미 있는 인물의 형상의 표피만을 데이터로 전환해 재현해낸다. 개별 인물의 포즈, 의상, 표정 등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조각이지만, 이 개별 조각들은 집단을 이룰 때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2008년과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와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두 번의 개인전에서 작가는 1대 8 비율로 축소된 약 1000명의 뮤지엄 방문객을 제작해 전시했다. 늘 벌어지는 일과와 일상의 참여자들에 대한 거대한 아카이브이기도 한 설치조각 작업은 큰 호응을 얻었다.
작가는 전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큐레이터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거나, 이미 방문한 방문객들을 작품의 요소로 사용하면서 공간에 주체와 작품이 함께 놓이게 했다. 결과는 일상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일상에서 동시에 보여지는 효과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과 기술에 기반한 산업생태계의 변화가 이슈다. '문화지체'라고 하던가. 비물질문화가 물질문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이 날로 심화되는 현대사회에서 기술이 사용자의 인식과 제도 속에 이식되기까지 시간이 점점 더 부족해지고 있다. 이런 격변의 과정에 예술가는 어쩌면 미술을 통해 지체된 일상에 균열을 내면서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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