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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준 응우옌하츠시바 '메모리얼 프로젝트II'

베트남 역사의 격변과 고통

[그림산책] 준 응우옌하츠시바 '메모리얼 프로젝트II'

깊은 물 아래에서 다이버들이 새해 행사에 사용되는 용 인형을 움직이면서 퍼포먼스를 벌인다. 카메라는 느리게 움직이면서 다이버들의 움직임과 몸의 표면을 훑듯이 가깝게 포착한다. 공 모양의 철창 속에는 수십개의 공이 들어있는데 이것들이 터지면서 공 내부에 든 염료가 피어오른다. 푸른 물과 붉은 용, 피어오르는 염료가 만들어내는 연무, 다이버들이 내뿜는 기포 등이 어우러지면서 시적이고도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준 응우옌하츠시바는 2001년 이래로 베트남의 복잡한 역사에 대한 자신만의 리서치로 수중 퍼포먼스 비디오를 네 차례 제작했다. 프로젝트의 하나인 '메모리얼 프로젝트II-해피뉴이어'는 1968년 1월 30일 음력 새해에 기습적으로 일어난 구정대공세(Tet Offensive)에 기인한 것이다. 용 인형은 베트남의 음력 설날인 테트에 대한 은유다. 알록달록한 염료가 터지는 공들은 설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와도 같은 불꽃놀이를 떠올릴 수 있지만 다른 한편 공세에 의해 남베트남 전역에 쏟아진 엄청난 폭격을 상징한다. 운명의 공이 내뿜는 짙은 염료가 바닷속을 어지럽히는 가운데 용과 둥근 철창을 짊어진 다이버들의 행렬은 식민과 이념전쟁 등 혼란스러운 역사의 반목에 직면했던 베트남의 일반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1968년 대공세가 일어난 해에 베트남의 오랜 지배세력이었던 일본에서 태어났고 이후 많은 베트남 체류자들이 정착한 미국에서 자랐다. 태어날 때부터 디아스포라(diaspora)의 역사를 안고 태어난 그에게 베트남전쟁은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그의 상태는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발화를 머뭇거리게 하며 또 다른 역사의 소외를 초래한다. 물 밖을 나가지 못하는 다이버들의 모습은 베트남 역사의 격변과 고통을 상징하면서도 디아스포라의 말할 수 없음과도 연결된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물 한가운데 있었다. 이 작품에서 그 어떤 감정보다 갑갑함이 크게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