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김장욱 기자】 "교육은 나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을 바꾸는 게 아니라 갖고 있는 본질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믿습니다."
교육계에 몸담은 지 올해로 50년. 희년(禧年)을 맞은 신일희 계명대 총장(사진)은 자신의 교육철학을 이같이 밝히고 "학생이라는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거름을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교육자'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신 총장은 지난 1966년 27세의 나이로 미국 프리스턴대에서 독일문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해 9월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교육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독일 킬대학 객원조교수, 연세대 독어독문과 부교수, 계명대 독어독문과 교수를 거쳐 계명대 총장을 역임하며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계명대는 그의 교육 희년을 맞아 그동안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업적을 기릴 수 있는 기념전시회를 오는 28일까지 행소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개최한다. '행소 신일희 박사 교육 희년 기념전'에는 신 총장의 중.고교시절 사진과 노트, 미국 유학시절의 필기노트 등을 비롯해 저서와 회고록, 각종 훈장 등 100여점의 자료가 전시돼 교육자로서의 신념과 도전, 생활철학과 발자취, 민간 외교가로서 지역과 세계를 소통하게 했던 그의 교육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939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캔트학교로 유학길에 올랐다. 신 총장은 주머니에 단돈 100달러만 갖고 한 달 동안 생선운반선에 몸을 싣고 일본을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이후 지금의 신 총장 모습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운 환경에서 유학생활을 보냈다.
그는 "당시 미국 사회는 인종 문제가 있던 시절이었다"며 "유색인종으로서 느끼는 거리감이나 심리적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또 "경제적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며 "5∼6시간 천장청소를 하거나 공사장 모래를 지고 나면 목 통증과 근육통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등 많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혹시 운동(골프)을 즐기느냐는 물음에 어렸을 때 캐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골프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 진짜 골프를 싫어(?)한다며 신 총장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응답했다.
그는 '50년 중 보람된 일'에 대해 "계명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외적(시회.정치.환경.재정)으로 어려운 과정이 많았다"며 "그러나 어려울수록 교직원들이 더욱 힘을 합치고 결집된 모습을 보여줬고 계명대가 가진 저력의 표현이 바로 '성서캠퍼스'(꿈과 피땀의 집합체)로, 이것이 자랑이자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교육계에 몸담으며 학자로서 보낸 시간은 후회하지 않지만 스승으로서의 시간은 그렇지 못했다고 소회했다. 신 총장은 "캠퍼스 건물 한 동을 짓는 것보다 훌륭한 제자 한 명을 발견하고 길러내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교육자의 길'일 것"이라며 "훌륭한 제자 한 명은 어떤 보석보다 빛나고 영국왕실 왕관에 박힌 다이아몬드보다 가치가 있는데 그런 보석을 많이 발굴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gimju@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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