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꽃'이라 불리며 자부심 갖던 것도 잠시
미공개 정보이용 규제로.. 범법자 전락 위기감 팽배
사표내고 개인투자 생활.. 박스권에 요즘 힘들어
#1. 2~3년 전까지만 해도 애널리스트 하면 결혼정보회사에서 선호하는 남편 직업군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스갯소리지만 농부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온다. 농부는 적어도 소유한 땅이라도 있지만 애널리스트는 그마저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만큼 고액 연봉도 아니다. 연봉은 낮아졌지만 일은 되레 많아져 야근은 일상이다. 그러다보니 애널리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2. 돈도 중요하지만 범죄자 취급을 받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금융당국은 애널리스트를 '잠재적 범법자'로 꼽고 있다. 증권사에서도 애널리스트를 리스크 요인으로 꼽으며 튀는 행동을 삼갈 것을 주문한다. 이런 주위의 시선이 따가워 애널리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애미(애널리스트 출신 개미)' 투자자의 길을 선택했다.
서울 여의도에는 개미와 매미, 여기에 최근에는 애미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가하게 파블로의 곤충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미'는 개인투자자입니다. '매미'는 매니저 출신 개미투자자입니다.
여기에 최근 부상(?)하고 있는 또 한 부류가 바로 저 같은 '애미'입니다. 유추해 보셨겠지만 바로 '애미'는 애널리스트 출신 개미투자자입니다. 저는 바로 그 '애미' 중 하나입니다. 여의도에 수만명의 '개투'(개인투자자)가 있지만 저 같은 사람도 수백명에 달합니다. 예전에 임대료가 비싼 고급 오피스텔에서 투자를 했지만 요즘 장이 어려워 임대료가 싼 오피스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잘나갈 때는 월 수천만원씩 벌기도 했지만 최근 두세 달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답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생활비도 주지 못했답니다. 제도권 내에 있을 때보다 고생은 더 하고 있는데 지갑은 더 얇아진 셈입니다.
■증권사 호시절 옛말
저는 '애미' 투자자로 일한 지 1년차입니다. 여의도에는 저처럼 생활하는 사람이 200명 남짓 되는 것 같습니다. 시드머니, 소위 굴리는 돈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는 3억원 규모로 직접 주식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애초부터 '애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38세인 저는 16년 전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증권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애널리스트로 당당하게 입사했습니다. 10년 정도 중소형 증권사였지만 열심히 일했습니다. 기업탐방은 물론이고 제가 쓴 기업분석 리포트에 '콜'(매수)이 붙어 주가가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하는 투표(폴)에서도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었죠.(웃음) 애널리스트 하면 억대 연봉을 떠올리는 분이 많죠.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꽤나 괜찮습니다. 저 역시 장가를 갈 때 처가에서 좋아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증권사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니까 억대 연봉자들이 많은 리서치센터를 구조조정했고 연봉 삭감을 많이 했습니다. 신분도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으로 돌렸습니다. 계약직이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니지만 연봉 삭감이나 권리에 대한 주장은 하기 힘듭니다. 왜냐고요? 진짜 잘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후배 애널리스트에게 물어보면 2년 전보다는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50% 삭감된 친구들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적지않게 받는다고 할 순 있지만 처우가 그만큼 악화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로 애미 투자자인 거죠.
■애널리스트 기피 현상
돈 말고도 '애미' 투자자로 내몰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제도적인 문제입니다. 미공개 정보이용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기업탐방을 하루에 3~4군데 열심히 다니며 다른 사람보다 먼저 좋은 기업을 발굴했지만 미공개 정보이용으로 조사를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 주위에 많은 이들이 금융당국의 조사로 인해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징계로 인해 그만뒀습니다. 애미 투자자가 된 것은 돈보다는 범법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위축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을 만나봐도 돈보다는 언제 내가 범법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 때문에 증권사를 그만두고 있답니다. 이들은 여의도 인근 오피스에서 백수인 듯 백수 아닌 백수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매미' 투자자들은 다시 운용사로 돌아가려 하고 있고, 상당수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미'들은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잠재적 범법자 취급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돌아갈 수가 없어 '사즉생'의 심경으로 묵묵히 투자할 뿐입니다.
■고정비 마련에 살림 빠듯
'처녀가 임신해도 이유가 있다'는 말처럼 애미 투자자가 된 사연도 기구합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지금이지 않겠습니까. 제가 '애미'가 됐을 때 인기가 좋았죠. 제조업으로 치면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 눈치도 보지 않으니까요. 증권사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들도 저를 부러워했었죠. 그런데 한때더군요
증권사 문을 박차고 나와서 증권사에서보다 일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하루에 5곳 이상의 기업탐방을 다녔고 정보모임도 빠짐없이 참가했습니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은 더 빨리(6시) 나와서 더 늦게(11시) 퇴근했습니다. 제 사업이니까요. 그리고 당장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한 달 고정비 벌기도 힘듭니다. 사무실 임대료, 부식비용, 생활비 등등을 마련하려니 힘에 부치더군요. 수익을 내지 못하자 탈모증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비용이라도 아껴보려고 다른 매미, 애미 투자자와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나타나더군요.
최근에 박스권에 들어간 증시는 정말 힘듭니다. 제 친구의 경우 증권사에서 나와 한창 장이 좋을 때는 월 1000만원씩 수익을 내기도 했지요. 회사를 그만두길 잘했다고 콧노래를 부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더 벌고 싶은 욕망을 멈출 수 없어 스탁론을 통해 원금을 4배로 늘렸습니다. 그런데 투자했던 종목이 줄줄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통장 잔고는 바닥 나고 생활비까지 쪼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300여명의 매미와 애미가 몰려있다는 서울 여의도 소재 S트레뉴(빌딩)는 최근 공실이 늘었고 가격이 저렴한 다른 여의도 사무실로 옮기고 있기도 합니다.
일반인들은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 출신이면 정보가 더 빠르고 많을 것이라고. 저는 정말 오해이고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에 관심만 있으면 정보는 인터넷 등을 뒤지면 요즘은 나옵니다.
관심의 차이이지 정보가 더 빠르거나 많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오히려 우리(애미.매미) 투자자들은 일반 투자자보다 더 손해를 볼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 이야기를 하다가 기업탐방도 놓치고 투자도 못했네요. 휴~ 오늘도 마이너스입니다.
kjw@fnnews.com 강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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