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미디어 아티스트 미야지마 다쓰오(59)는 1996년부터 '숫자세기(Counter Voice)'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숫자세기: 물'(1996년), '숫자세기: 공기'(1996년), '숫자세기: 와인'(2000년), '숫자세기: 우유'(2005년) 등은 이후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대개 10분에서 15분간 작가를 포함한 퍼포머들은 숫자를 9부터 1까지 세고 0에 도달하면 앞에 놓인 물, 와인, 우유 등에 머리를 넣었다 빼면서 또다시 숫자 세기를 반복한다. 시간의 반복과 리듬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간을 의미하며, 나아가 삶에서 죽음까지의 여정을 대변한다. 하지만 퍼포먼스에 숫자 0은 등장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시간의 흐름에 무(無) 또는 공(空)을 상징하는 0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숫자세기: 후쿠시마 바닷물'은 1996년 제작된 첫 번째 숫자세기 퍼포먼스와 관련이 있다. 당시 여섯 명의 프랑스인은 프랑스어로 9부터 1까지 세고, 0이 되면 물속에 머리를 넣는 행위를 반복했다. 사용된 물은 1966년부터 1996년까지 프랑스가 핵무기를 실험하던 장소였던 남태평양 연안의 무루로아에서 떠온 물을 증류한 것이었다.
2014년 숫자세기 퍼포먼스에는 작가 본인이 직접 출연했다.
배 위에서 일렁이는 화면을 여과 없이 담은 카메라는 멀리 후쿠시마 연안을 비추면서 이 퍼포먼스가 원전 사고가 일어난 연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각인시킨다. 원전사고, 핵무기 실험 등 수차례 진행되는 인류의 역사적 붕괴 앞에서 "시간은 영속적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처음과 끝이 없이 흘러갈 뿐이다"라는 그의 생각은 적합한 반응일까. 나는 이 작품이 시종일관 무서웠다. 퍼포먼스의 결말이 이대로 끝이 없이 끝나는 것이 두려웠는지, 사용된 물을 카메라 밖의 나에게 부어버릴까 두려웠는지.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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