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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회수 장치 있어야" 코코본드 매입에도 조건 단 韓銀

한발짝도 못나간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한은 vs. 금융위 날선 신경전
한은 "대출회수 5년 길다" 콜옵션 조기행사 요구할듯


이르면 이달 내 도출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이 각론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TF)는 자본확충펀드와 직접출자를 병행하기로 했지만 두 방안 모두 구체적 방식에는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이 출자에 이어 자본확충펀드 핵심 수단으로 거론되는 코코본드 매입에도 난색을 표하면서 정부.금융당국과의 긴장국면이 불거지고 있다. 한은은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코코본드를 매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구체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기회수 장치'가 국제규범과 충돌할 가능성이 커 기관 간 조율이 쉽지 않다.

지난 19일 한국은행은 펀드에 빌려준 대출금을 속히 회수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기존에 내세운 '손실 최소화 원칙'에 더해 '조기회수 원칙'을 들고 나온 것이다.

맥락은 '2009년식 자본확충펀드'에서 찾을 수 있다. 한은은 2009년 은행자본확충펀드에 빌려준 대출금을 회수하는 데 5년 이상이 걸렸다. 한은법 64조에 따르면 한은 금융기관 대출은 만기 1년 이내 채권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한은으로서는 '오래' 기다려 돈을 돌려받은 셈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 2009년 은행 자본확충펀드 때는 콜옵션 방식을 사용했음에도 대출금 회수가 5년이나 걸렸다"면서 "(이번에는) 이를 유동화해 한은 대출금을 조속히 상환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콜옵션은 만기 전 상환을 가능하게 한 '조기(혹은 중도) 상환청구권'이다. 하지만 2009년 당시 은행권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에 붙은 콜옵션은 국제기준에 따라 채권 발행 5년 이내에는 행사할 수 없었다. 코코본드를 발행한 은행권이 콜옵션을 사용해 돈을 빨리 갚으려고 해도 5년은 꼼짝없이 묶여 있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한은이 말한 '대출금 조기회수 장치'란 콜옵션에 붙은 5년의 제한을 앞당기거나 없애달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5년'이라는 일종의 '전매제한'을 줄이거나 없애지 않으면 코코본드를 매입할 수 없다는 것.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일전에도 5년으로 명시됐던 (콜옵션 행사) 제한기간을 1~2년으로 줄인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5년'을 줄이는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5년'은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국가 간 합의인 '바젤기준서'에 명시돼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회원국의 법률, 시행령, 규칙 등에 반영된 국제규범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감원이 정하는 '은행업감독업무 시행세칙'에 '조건부자본증권의 경우 콜옵션 행사기간을 5년으로 제한한다'는 규정이 들어가 있다.

이 때문에 금융위와 금감원은 한은의 입장이 탐탁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제규범인 바젤기준서를 국가 사정에 따라 자의적으로 조정하면 국가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 신뢰도 저하 외에 은행이 코코본드를 중도 상환하면 BIS 자기자본비율이 줄어든다는 점도 문제다. 코코본드는 빚이 아닌 '자본'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를 상환하면 자본이 빠져나가는 효과를 가져온다. 금감원은 보험사와 은행이 위험액 대비 일정한 자본을 갖추도록 유도하고 있다. 국제협약(바젤III)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은행은 자기자본비율 8% 이상, 보통주자본비율 4.5% 이상, 기본자본비율은 6% 이상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금감원은 따라서 채권 유동화는 시장에서 해결하라고 권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은이) 콜옵션 행사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시장에 팔면 된다"고 했다.
코코본드를 직접 시장에서 거래하라는 것. 하지만 사실상 만기가 없는 코코본드에 대한 시장 수요는 극히 제한돼 있다. 내놓아도 안 팔릴 가능성이 크다.

빌려준 돈을 빨리 돌려받아야 한다는 한은의 '원칙'과 국제규범을 지지하는 금감원의 '원칙'이 팽팽히 대립하면서 향후 협의 양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