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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윤형근 'Umber-Blue' 내면으로 스며든 검은 수묵의 빛

[그림산책] 윤형근 'Umber-Blue' 내면으로 스며든 검은 수묵의 빛

혼란의 시기에 휴머니즘을 추구하던 작가 윤형근(1928~2007)은 시대적 아픔인 전쟁으로 인한 비극과 참상으로 고통 받던 시절, 내면에서 폭발하듯 분출하는 한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던 인물이다.

당시 한지에 스며들어 번지는 방식을 사용한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호평을 받은 김환기의 영향으로 윤형근의 작품세계는 1973년을 기점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작가는 먹을 머금은 붓으로 전통 한지 위에 획을 긋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내기 위해 검은색이 아닌 암갈색과 군청색 물감을 섞고 테레빈에 희석시켜 거친 리넨 또는 캔버스 화폭에 색을 입혔다. 색띠 상태의 회화에 이렇게 선염과 발묵의 효과를 더해 색면 회화로 변모하게 된 그의 작품은 한정된 두 가지 색상이 썩은 나뭇잎과 같은 자연의 섭리를 놀라울 정도로 깊게 묘사해낸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서구적 재료와 물감을 캔버스로 옮겨와 반복한 붓질이 한국 전통 수묵화의 깊은 먹빛으로 완성돼 'Umber-Blue'와 같은 윤형근만의 독창적 화면이 완성된 것이다.

또한 작가는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삶과 예술 사이에서 중용을 지키기 위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3일 혹은 수년이 걸리기도 했고, 하나의 작품은 자연의 순행에 걸맞은 최소한의 붓질로 완결시켜야 한다고 믿었기에 주로 바닥에 앉아 작품을 제작했다.


미술평론가 장준석은 이를 두고 "비록 서양의 재료를 토대로 했지만 내면으로 스며든 빛깔은 단아하면서도 동시에 담담하다. 누구도 표현해내기 어려운 은근함과 격조를 지닌 그의 작품은 고뇌 속에서 이루어진 그의 조형적 진솔함이 그 바탕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검은 수묵의 빛들은 여운을 남기며 형성됐다 사라지며 사각의 캔버스에 작가 윤형근의 고뇌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변지애 K옥션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