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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김창열 '물방울'.. 작은 물방울 속에 담긴 우주

[그림산책] 김창열 '물방울'.. 작은 물방울 속에 담긴 우주

'물방울을 그리는 화가' 김창열(87)은 1970년대 초 파리에서 데뷔한 이후 지난 40여년간 줄곧 물방울이라는 소재에 천착해 왔다. 김창열의 파리 생활은 마구간 화실에서 가난과 결핍 속에 시작됐다. 어느 날 캔버스에 뿌려본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것을 보고 시작된 물방울 그림은 첫 개인전부터 환상적이면서도 완벽한 면모로 당시 하이퍼 리얼리즘과 유럽의 극사실주의에 힘입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사실 그의 물방울은 현실적인 것이 아닌 캔버스 마대라는 물질적 현상과 물방울의 착시 현상을 중첩시킨 것이다. 구에 가까운 형태의 크고 작은 영롱한 물방울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안정감 있게 화면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바탕에 거친 마포의 직물성은 극사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곧 사라질 듯한 순간을 붙잡고 있는 그림, 존재와 부재의 아슬아슬한 경계, 그 짜릿한 긴장을 담고 있는 물방울은 20세기 한국사를 관통하는 고통과 상처의 원형이 진화해 온 형태다.


"물방울은 유년 시절 강가에서 뛰놀던 티 없는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고, 청년 시절 6·25전쟁의 끔찍한 체험이 담겨 있기도 하지. 전쟁이 끝나고 나니 중학교 동기 120명 중에서 60명이 죽었어. 나이가 많아야 스물이야. 앵포르멜 작품에서는 총에 맞은 육체, 탱크에 짓밟힌 육체를 상징적으로 그리려 했던 것이지. 그 상흔이 물방울 그림의 출발이 되었어."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마대 위에 한문을 배경으로 써놓고 그 위에 물방울을 그린 새로운 시도를 통해 동양적 정취를 한층 더 높여주었다.

미술평론가 정병관은 이때부터 그의 작품 제목이 모두 '회귀(回歸)', 즉 우주의 순환론, 빗방울이 기체가 되고 다시 이슬방울이 되어 순환하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지 추측한다. 만일 그런 뜻이라면 물방울은 허망한 것의 상징이 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들은 상징주의 회화로의 '회귀'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변지애 K옥션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