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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신디 셔먼 '무제'

욕망과 현실의 괴리

[그림산책] 신디 셔먼 '무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현대미술가 중 한 명인 신디 셔먼(62)은 사회의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으로 분장한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자화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1970년대 후반부터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담은 '무제 필름 스틸' 연작을 제작했고, '역사 초상화' '섹스픽처' '마네킹' '여성 사회인사 연작' 등을 차례로 선보였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정체성은 모두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고 사회문화적 환경에 영향 받은 것이다. 정체성을 만드는 요소들은 전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모호하다. 이러한 순간들을 포착한 신디 셔먼의 사진들은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뿌리 박힌 이미지의 관행과 전형을, 그리고 이것을 매순간 소비하고 공모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2000년 제작된 '무제' 작품들에서 작가는 쇼비즈니스의 주변부에서 활동하는 여성이나 할리우드 유명인이 되고 싶어하는 여성들로 분장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유명인이나 인기 스타에 반한 인물들로, 유명인을 지향하지만 현실은 하루하루 근근이 일거리를 찾고 있는 배우이거나 한때 잘나가는 아역으로 반짝했지만 지금은 퇴로의 길을 걷고 있는 배우, 언젠가는 혜성같이 등장해 단숨에 유명해질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품고 있는 일반인 여성들이다. 모두 매끈한 배경의 스튜디오에서 카메라를 가까이 두고 포즈를 취했는데, 작가가 포착한 모습은 한결같이 '과도하다'. 지나친 메이크업, 잘못된 성형수술, 유난히 화려한 옷차림과 장신구, 마지막으로 꾸며낸 듯한 포즈가 우스꽝스러우면서 한편으로 연민을 자아낸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노심초사하면서 미래에 집착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이렇듯 과도하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