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로 떠나는 시간여행.. 충남 공주·부여를 가다
의자왕과 삼천궁녀만 알고 떠나도 즐길 수 있는 부여
이맘때면 궁남지는 연꽃천지
엄마 젖무덤같은 공주 무령왕릉
공산성 성벽길 거닐다보면 금강과 공주 시가지가 한눈에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충남 부여 백제역사유적지구는 큰 부담없이 떠날 수 있는 역사 여행지다. 삼천궁녀의 전설을 품고 있는 낙화암 아래로 백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 공주·부여(충남)=조용철 기자】 떠나기 전에는 유적과 관련한 내용을 미리 공부해야 할 것 같고, 답사 뒤엔 무엇인가를 반드시 습득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때문에 '역사 여행'은 종종 부담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국내 대표 역사 여행지 중 하나인 충남 공주와 부여는 백제하면 한 번쯤 들어봤던 낙화암, 삼천궁녀, 무령왕릉,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 정도만 알고 떠나도 부담없이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 전북 익산시에 분포한 백제 관련 8곳의 역사 유적을 말한다. 사비 도읍 시기의 역사 유적이 있는 부여지구에는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 고분군이 있고, 공주지구에는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이 포함된다.
부소산은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해발 106m 고도를 가진 부여의 진산이다. 동쪽과 북쪽은 가파르고 백마강과 맞닿았다. 부소산은 평상시에는 백제왕실에 딸린 후원 구실을 했으며 전쟁 때에는 사비도성의 최후를 지키는 장소가 됐다. '부소'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를 뜻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부소산은 예로부터 아름답고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름났다. 오늘날에도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될 만큼 경관이 남다르다.
이처럼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인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이다. 지금의 공주인 웅진에서 현재 부여인 사비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 16년(538년)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성벽은 통일 신라 시기에 수축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부여 궁남지에 핀 수련
낙화암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사비도성이 함락됐을 때 백제의 궁녀와 여인들이 몸을 더럽히지 않고 절개를 지키고자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은 장소로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해 낙화암이라고 부르게 됐으며 절벽에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 때 더 잘 보인다.
정림사는 백제 성왕이 538년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길 때 건축한 백제의 대표적인 사찰로 부소산성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정림사지 절터 한가운데 자리한 정림사지 5층석탑은 높이 8.33m의 결코 작지 않은 탑으로 탑신부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 민흘림 기법을 적용해 상승감을 보여주는 등 장중하면서 부드럽고 육중하면서 단아한 세련된 백제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시대에 세워진 귀중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1층 몸돌에는 신라군과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징벌하고 세운 기념탑'이란 글씨를 새겨놓아 한동안 소정방이 세운 '평제탑(平濟塔)'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정림사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백제시대 만들어진 인공연못 궁남지가 있다. 마천지(馬川池), 남지(南池), 마래방죽이라고도 불리는 궁남지는 674년 조성된 경주 안압지보다 40년 먼저 만들어진 인공연못이라고 한다. '궁궐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 기록에 따라 궁남지라 부르고 있다.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남아있는 궁남지는 매년 7월이면 '부여 서동연꽃축제'로 화려하게 핀 연꽃을 보러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백제 웅진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공주 공산성은 백제가 고구려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전열을 재정비하고 패색 짙은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성이다. 고구려에 맞서 영토를 지키고 중국과 일본 등 외국과 활발히 교류한 해상왕국으로 명성을 날린 백제는 475년에 이르러 고구려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도성인 한성이 함락되는 불운을 겪는다. 이 전투에서 개로왕이 전사한 뒤 백제 제22대 왕으로 즉위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공산성은 백제의 도성이 된다.
공주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금서루에 올라 우측 성벽을 따라 가면 구불구불 완만하다가도 때로는 급하게 흐르듯 이어지는데 굳이 안내를 받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 진남루, 동문루, 연지와 만하루, 공북루 등 조선시대 문루 건축을 감상할 수 있다. 공산성의 북쪽에선 금강과 어우러진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성벽을 거닐다 보면 만나는 문루 건축물 외에도 공주 시가지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금강이 발 아래 흐르는가 하면 강 너머 공주 시가지를 둘러볼 수 있다.
공산성을 둘러본 뒤 찾은 무령왕릉은 지난 1971년 발견됐다.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 부부가 합장된 벽돌무덤으로 모두 108종 4600여점의 유물이 발견돼 이중 12종 17점이 국보로 지정돼 있다.
발굴 이후 백제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이 활발히 이루어져 베일에 싸였던 고대국가 백제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 피장자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김세만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장은 "부여와 공주는 세계적으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중심으로 새롭게 각광받는 지역"이라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포함한 관광 콘텐츠 개발과 기존의 관광자원을 활용해 중부권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육성하기 위한 사업을 다양하게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ycch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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