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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김기린 '안과 밖'

한지로 겹겹이 채워진 명상의 공간

[그림산책] 김기린 '안과 밖'

단색으로 채워진 화면의 바탕에 반복 나열된 점으로 이뤄진 김기린(80)의 모노크롬 회화는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에 영향을 준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에드 라인하르트를 연상시킨다. 그는 1970년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단색의 평면회화를 오브제화한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노크롬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다.

1980년대 선보인 사각의 캔버스 안에 작은 사각형과 달걀형 점을 기본단위로 한 평면회화 '안과 밖' 연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제목부터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 양립한다. 수십번 덧칠하여 만들어진 단색의 초기 작품에서 우리는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본질로 돌아간 순도 높은 화면과 이를 통해 축적된 화면의 깊이가 선사하는 평온함과 정적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관람자에게 어느 순간 마치 새로운 공간이 열리는 듯한 시각적 명상의 공간을 체험하게끔 하는데, 그가 강조하는 재료의 물성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캔버스가 젖은 상태에서 한지를 겹겹이 쌓아 올린 그의 화면은 테레핀유(油)에 희석된 물감과 스프레이 건의 사용으로 완성된 미묘하면서도 매트한 질감이 그 특징이다.

이후 1990년대에 선보인 빨강, 노랑, 녹색과 남색 등 원색 계열의 '빈' 세계에 채워진 반복 나열된 색점들은 그런 그의 2차원적 표면의 깊이에 대한 실험에 이어진 색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표방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그의 작품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상호관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감춰진 '보이지 않는 것(안)'의 공간에서 한 단계 나아가 '보이는 것(밖)'에 대해 이야기하고, 색채를 통해 다방면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변지애 K옥션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