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술가로 태어났고, 따라서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 책임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살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그림은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림은 마법처럼 존재한다."
뉴욕의 도심부 빈민가를 중심으로 낙서화, 즉 그래피티 아트가 하위문화로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 작가 키스 해링은 뉴욕의 거리와 지하철역 벽을 메우고 있는 낙서들을 본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낙서에 담긴 인간 본연의 표현 욕구와 일상 속 공간에서 일어나는 대중과의 교감을 눈치챈 것이다. 그는 도시의 길거리에 흰색 분필을 들고 나섰고, 그의 재치 있는 낙서는 경찰과의 쫓고 쫓기는 일련의 소동과 함께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키스 해링의 작품 시리즈 중 하나로 총 17점으로 이뤄진 '블루프린트 드로잉'은 1980년대 초 해링이 블루프린트 인쇄를 염두에 두고 그렸던 이미지들을 후에 실크스크린으로 완성한 것이다. 빛나는 아기, 날아가는 비행접시, 짖는 개 등 해링을 특징짓는 만화적 이미지로 표현된 이 작품은 언뜻 보기에 가벼워 보이지만, 그 속에는 다른 낙서화가들과 달리 인종차별 반대, 반핵운동, 동성애자 인권운동, 에이즈 교육 등 무거운 사회문제를 담고 있다.
해링은 1990년 만 31세에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예술가로서 본인의 책임을 생각하면서도, 예술이 실제 삶에 더욱 가까워져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해링은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1988년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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