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직후 가난과 질병의 고통과 이산의 아픔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독창적 예술세계를 일군 국민화가 이중섭(1916~1956). 40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전쟁 직후 불과 5년에 걸친 짧은 기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종이와 은박지에 연필, 잉크, 먹, 크레파스로 그린 무수한 그림들은 비록 서양의 양식과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양담배를 싸는 은박지 위에 새겨넣은 드로잉과 유화에서 엿보이는 동양의 서체를 연상시키는 붓질, 고구려 고분 벽화처럼 밀착된 전통적 느낌의 표면 등은 그가 그림에 대해 부단히 고민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특히 고려자기의 상감기법을 응용해 직접 창안한 은지화는 유화에서 엿보이는 선조(線條)를 중시한 유려한 드로잉과 더불어 그의 독자적 화풍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중섭이 무엇보다 중시했던 민족적 요소는 격조와 해학이 담긴 화면에서 두드러지는데 즉흥적으로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그의 삶의 궤적을 따르고 있어 너무도 솔직하고 서민적이다.
수년간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모습을 그렸던 이중섭은 천진난만한 아이들, 뛰어노는 물고기 등 힘든 현실과 상반된 완벽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단순한 선과 따뜻한 색감으로 화폭에 담았다. 스스로를 '정직한 화공(畵工)'이라고 표현했던 이중섭에게 예술은 그렇게 '꿈'이고 '이상향'이며 '은신처'였던 것이다.
변지애 K옥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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