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그림산책]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 '소용돌이 숲'

카메라에 담긴 낯선 밀림

[그림산책]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 '소용돌이 숲'

스페인 출신의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39)의 '소용돌이 숲'은 직접 제작한 짐벌 카메라를 이용해 브라질의 열대밀림을 촬영한 작품이다. 작가는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한 이후 최근 1~2년 사이 '팬텀' '소용돌이 숲' 등을 발표했는데 모두 브라질의 밀림인 마타 아틀란티카(Mata Atlantica)를 촬영한 것이다. 식물들이 빽빽한 울창한 밀림을 촬영한 두 필름은 촬영 및 상영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시네마틱 가상현실(Cinematic VR) 장치를 택한 '팬텀'은 밝은 전시장에서 VR 장치를 착용하고 관람하게 된다. VR시스템은 카메라의 눈과 관람자의 눈을 동일시한 것이 아니라, 관람자의 신체가 영상에 편입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보는 내가 아니라 경험하는 나를 가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가상현실을 통해 실제의 경험을 구현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실제의 나에서 가상의 나로 전이하는 경험, 가상의 내가 가상의 현실에 편입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실제의 나는 결코 이렇게 볼 수 없다.

반면 '소용돌이 숲'은 어두운 전시장에서 16㎜ 프로젝션으로 영사한다. 카메라의 모터로 움직이는 짐벌이 회전하면서 밀림을 촬영했다. 계산에 의한 회전 각도와 초당 프레임 사이에 수학적인 결합이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 방향을 만들었다. 수직, 수평, 회전의 단일한 움직임으로 구성된 쇼트가 반복되었다. 16㎜ 프로젝션의 특별한 질감은 밀림의 공기를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관람자 앞에서 움직이는 밀림은 대단히 낯설다. 사방이 나무로 채워진 공간은 보통의 방향감각과 거리감각으로 반응하는 공간이 아닐 것이다.
나아가 소리도, 냄새도, 촉감도 없이 카메라의 기계적인 움직임에 의존한 보기만이 허용된 밀림은 실제의 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실제의 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실제의 대상의 낯섦을 보는 나로 존재한다. 우리는 밀림을 이렇게 바라본 적이 없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