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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제주 해녀와 김만덕, 양성평등의 아이콘

[특별기고] 제주 해녀와 김만덕, 양성평등의 아이콘

우리 역사상 전통시대에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을 꼽으라면 단연 제주일 것이다. 물이 고이지 않아 논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 제주, 이곳에서 여성들은 해녀가 되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가정을 돌봤다. 해녀들은 아무런 기계장치 없이 호흡조절만을 통해 바닷속 10~20m 깊이까지 내려가 하루 서너 시간 해산물 채취 작업을 한다. 지금은 고무로 된 잠수복을 입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 무명저고리만 입고 차가운 바닷물 속에 뛰어들었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의 자식들을 먹여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제주 해녀들은 19세기 말 이후에는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해외로까지 진출했다.

제주 해녀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전통시대에 오히려 21세기보다 더욱 주체적인 삶을 살던 여성들이었음을 깨닫고 감탄하게 된다. 제주 해녀들은 가족을 위한 강인한 생활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공존과 더 큰 번영을 위해 단단한 여성공동체를 형성했다. 그들은 토론을 통해 자치규약을 정하고, 이에 따라 해산물 채취 자격과 범위, 금채기간 등을 정했다. 또한 공동의 노력으로 바다밭을 끊임없이 가꾸어 지속가능한 공존을 추구하고, 오랜 세월 축적된 물질 기술과 해양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승해 나갔다. 이 같은 공동체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함께 먼 바다까지 갈 경우 물질 실력이 가장 약한 해녀를 배려하고, 아픈 동료가 있으면 수확물을 나눈다고 한다.

제주가 낳은 '조선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 김만덕(1739~1812) 역시 시대를 앞서간 여성의 표상이다. 그녀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기녀가 되었지만 이후 객주를 차려 막대한 부를 일구고, 제주도 전체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릴 때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 제주 이웃들의 목숨을 구했다. 스스로 운명에 도전해 개척하고, 일궈낸 성공을 기반으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정신을 실현해간 삶의 여정은 오늘날 성별을 초월해 여전히 큰 울림을 안겨준다.

사회적 뒷받침을 전혀 기대할 수 없던 전통사회에서 제주 해녀나 김만덕 같은 여성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문화와 여성 내면에 이미 양성평등의 저력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국가의 존립과 미래발전의 필수조건이 된 지금, 우리 역사와 전통 속에 담긴 여성의 주체성과 양성평등 의식, 모성애적 리더십과 공동체의식, 약자를 배려하는 문화 등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해 계승하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24일부터 26일까지 해녀와 김만덕의 고향 제주에서 '제16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가 열린다. '세상을 바꾸는 희망에너지 일.가정 양립! KOWIN이 동참합니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세계 31개국에서 온 국내외 한인 여성 지도자들과 차세대 주역 550여명이 한자리에 모인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며 조국의 위상을 높이고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한인 여성들은 해녀와 거상(巨商) 김만덕이 보여준 우리 사회 여성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들이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과제 발굴과 양성평등의 가치 확산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댄다. 여성 인재들이 개척해 나갈 도전의 길에 이번 KOWIN 대회가 중요한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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