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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서울 한복판서 재현된 프랑스혁명 시대의 사랑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가 성공리에 공연을 마쳤다. 이번 공연은 라벨라오페라단(단장 이강호)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데뷔이며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안드레아 셰니에’는 불과 2년 전 스테파노 포다의 고예산 프로덕션으로 국내 무대에 오른 일이 있어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될 것이 자명한 가운데 행해진 놀라운 도전이었다.

일리카에 의해 완성된 ‘안드레아 셰니에’의 대본, 내용의 큰 줄기는 이러하다. 쿠와니 백작 가문의 하인 제라르는 막달레나를 향한 연정을 품고 있지만 대를 이어 하인 신세인 자신의 상황을 원망한다. 백작의 파티에 초대받은 시인 안드레아 셰니에가 백작의 딸 막달레나를 만난다. 셰니에는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막달레나에게 사랑의 중요성을 인지시키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혁명의 거친 바람에 헤어진 두 사람은 어렵사리 재회하지만 셰니에는 이미 혁명 주동자들에 의해 사형 언도를 받은 상태다. 막달레나는 사형 언도를 받은 한 아이의 어머니를 살리고 자신이 대신해 사형수가 된다. 감옥에서 셰니에와 막달레나는 재회하고 두 사람은 함께 죽음을 맞는다.

함락된 바스티유 감옥의 벽면을 상징한 듯한 프로시니엄이 도드라진 무대, 그 벽면 안쪽은 쿠와니 백작의 성 내부다. 관객들은 이 프로시니엄 디자인으로 인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으로 공연을 감상하게 된다. 귀족들은 시위대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격변하는 세태를 철저히 외면한 채 가보트를 추는 안일함을 보인다. 2막의 무대 위 마라의 흉상 실루엣은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무대를 그대로 차용한 듯 보여 참신함이 아쉬웠다. 반면 3막과 4막은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투영한 상징적인 연출이 돋보였다. 과거의 모습을 재현했지만 프랙탈 구조를 택한 만큼 전통적인 요소와 미래지향적인 기술력이 어우러져 괄목할만한 미장센을 탄생시켰다.

라벨라오페라단의 ‘안드레아 셰니에’는 예매율 1위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 공연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음악적인 완성도에 있었다. 경험 많은 가수들은 매 순간을 노련하게 이끌어나갔다. 여러 작품을 함께 수행해온 이회수 연출, 양진모 지휘자, 이강호 단장의 팀워크가 돋보인 공연이었다. 1막에서는 오케스트라에 묻혀 가수들의 목소리가 다소 작게 들렸으나 제라르 역의 장성일이 물꼬를 터주며 관객의 귀를 열어 주었다. 셰니에 역 국윤종의 '언젠가 푸른 하늘 아래서’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백미는 3막이었다. 셰니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과거 하인이었던 제라르에게 몸을 담보로 내세우는 막달레나, 그녀를 탐하고자 했지만 자신을 억제하는 제라르. 무대 위에서 표현하기에 다소 위험요소가 있는 이 장면은 연출의 섬세한 완급 조절로 관객들이 숨을 멈추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재탄생됐다.
막달레나 역 오희진이 혼신을 담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요'를 부를 땐 푸른색으로 일관되던 조명이 붉은 색조로 변하면서 그녀의 결연한 의지를 부각시켰다. 귀족의 격식을 가슴에 달린 불필요한 검은 장식으로 상징화한 점이나 회색빛의 가발을 써서 앙샹레짐을 표현 한 의상과 분장도 인상적이었다. 향후 오페라단의 레퍼토리로 확정되어도 손색없는 공연이었다.

김도윤 ‘수프림 오페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