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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이중섭 '호박꽃'..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림산책] 이중섭 '호박꽃'.. 가족에 대한 그리움
이미 상당히 자란 크고 작은 호박들과 여기저기 망울이 맺히기 시작한 호박꽃들 사이로 등불처럼 노랗게 활짝 핀 호박꽃 하나가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 좋게 뻗어나가는 호박넝쿨 사이로 황토 빛 흙내음이 진하게 풍겨 나오는 듯한 인상에 이끌려 그림 앞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우리는 거침없이 그어 내린 자유로운 필획들로 형태의 윤곽선과 색채의 경계가 한데 어우러진 추상적 화면을 마주하게 된다.

'호박꽃'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거칠고 힘찬 붓질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소'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이중섭(1916~1956)의 작품이다. 이중섭은 즉흥적이면서도 과감한 선묘 위주의 표현주의적 화풍으로 광복 이후 6·25전쟁, 이데올로기 대립과 같은 민족사적 수난이 자신에게 남긴 개인사적 상처를 예술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해야 했고, 극한적인 삶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이중섭의 작품에서는 특히 화면에 등장하는 여러 소재들, 예컨대 어린이, 물고기, 새, 게 등이 선으로 연결돼 있거나 몸이 한데 얽혀 결합돼 있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호박꽃'에서도 화면 전체를 에워싸는 넝쿨, 줄기의 표현을 통해 해체된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반영된 이중섭만의 구도상 특징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올해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 타계 60주년이 되는 해로 전시·출판·연극·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를 기리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여기에 소개된 '호박꽃'은 현재 서울 세종대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에 나온 작품으로 얼마 전 열린 경매에서 13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다시 어느 누군가에게로 돌아갈 이중섭의 이 작품, 전시가 끝나기 전에 한번 직접 관람하기를 권한다.

김현경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