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를 이어 붙여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분자기계를 만든 화학자들이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5일(현지시간) 장 피에르 소바지(Jean-Pierre Sauvage)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교수와 프레이저 스토다트(Sir J.Fraser Stoddart)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버나드 페링가(Bernard L. Feringa)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교수를 올해의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계인 분자기계를 만들어냈다"며 "분자기계는 머리카락 굵기의 1000분의 1 크기로, 이를 통해 새로운 물질이나 센서, 에너지 저장 시스템 등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분자기계는 기계적 움직임을 분자 수준에서 구현한 개별 분자 또는 분자 집합체를 의미한다.
장 피에르 소바지 교수는 지난 1983년, 서로 다른 분자 2개를 기계적으로 결합해 고리 형태로 연결, 새로운 형태의 분자를 만들었다. '캐테네인(Catenane)'이라고 불리는 이 분자는 도넛 두개가 고리로 연결된 것처럼 생겼다. 분자를 활용해 인간이 인위적인 분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증명한 것이다.
프레이저 스토다트 교수는 1991년 소바주 교수의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도넛 형태의 분자에 막대기 형태의 분자를 꽂은 모양으로 분자를 만들었다. 이 분자를 '로탁세인(Rotaxane)'이라고 한다. 막대기 안에 들어간 분자를 좌우로 이동시키거나 회전시켜 분자 스위치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복잡한 분자 운동을 인간의 의지로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페링가 교수는 1999년, 분자에 최초로 모터를 달았다. 분자가 한쪽 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는 분자를 이어 붙여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분자기계를 만들어냈다.
분자기계는 아직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연계에 존재하는 분자를 활용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창의적으로 고안한 인공 구조체를 새로운 화학합성 방법에 따라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초과학으로서 화학의 위상을 한층 높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노벨위원회는 "컴퓨터의 발전은 소형화 기술이 어떻게 혁명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준다"며 "분자기계 연구는 화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서울대학교 화학부 이동화 교수는 "고전적인 합성은 천연물들을 화학자들이 화학적 결합을 시도해 인간에게 이로운 화학물질을 만들어낸 것이라면 분자기계는 인간이 미리 설계를 해놓고 분자와 분자를 이어 붙여서 거대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며 "인간이 정해놓은 목표를 가지고 합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화학이 가지는 낭만 중에 하나"라고 강조했다.
서강대학교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이번 노벨화학상은 화학의 창조적인 특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그동안 화학 분야에도 실용성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지만 분자기계는 아직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 단계지만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는 점이 인정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jjoony@fnnews.com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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