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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박수근 '귀로'..고목과 오누이의 생명력

[그림산책] 박수근 '귀로'..고목과 오누이의 생명력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가장 한국적인 화가 박수근(1914~1965)은 18세가 되던 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가로 데뷔했다.

데뷔 후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자 했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 이어져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집'이 특선을, '노상에서'가 입선하면서 다시금 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냈고 안정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소박한 인물과 낯익은 풍경을 소재로 삼는 것은 변함없었지만 작품 제작이 안정적으로 접어들면서 대상이 뚜렷해지고 특유의 재질감과 단순한 형태가 원숙해져 독자적 조형성을 이루기 시작했다.

전업작가로서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국내외에서 인정받으며 작가로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국전 추천작가가 되고, 심사위원을 맡으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인 박수근의 전성기는 주제의 깊이나 화강암 같은 질감의 표현 기법이 완숙에 이른 시기에 엄습한 병마로 1965년 숨을 거두면서 막을 내렸다.

'귀로'를 제작한 1964년은 그가 작고하기 한 해 전으로, 지병으로 인해 심각한 고통이 따랐으나 작품 제작을 강행했다고 한다. 자신의 건강보다는 작품 제작에 대한 열정을 우선으로 했던 화가가 작은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은 어린 동생과 누이의 모습이었다.

전면에 고목을 크게 배치하고 좌측 하단에 어린 동생과 누이의 모습을 묘사했다. 하늘을 향해 화면 상단 끝까지 나뭇가지를 시원하게 뻗은 높다란 고목나무 아래로 한 손에는 어린 동생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로는 함지를 받치고 동생을 이끄는 누이가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담았다.
고목나무와 인물의 단출한 소재지만 이들을 균형 있게 구성했다.

화면의 무게중심을 잡거나 좌우, 상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밑동이 굵은 나무의 형태를 취하는데 중심이 되는 굵은 나무줄기의 자의적 형태에서 강하게 내재된 생명감이 전달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의 표상이 가난과 고뇌를 이겨내던 좌절하지 않는 작가의 자화상으로 느껴진다. 어린 동생과 누이의 상의를 푸르고 붉게 물들여 채색이 절제된 화면에 생기를 주고, 나뭇가지 끝자락에 새둥지를 얹어 놓아 균형의 조화를 보여줬다.

이현희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