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시작된 홈인테리어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소수의 '사람답게 살기' 프로젝트인 줄만 알았던 집안 꾸미기가 실은 전 국민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물론 허리띠 졸라매고 몇 년만 고생하면 훨씬 더 좋은 동네의 넓은 공간에서 살 줄 알았던 희망이 먼 미래에 혹은 어쩌면 이번 생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는 좌절로 바뀌는 시점과 묘하게 일치한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그 집이 은행과 나의 공동자산이든, 못 하나 못 박는 남의 자산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나만의 취향이라는 것이 실은 '홈스타그램'에 올린 수백만 유사 사진의 하나면 어떠랴. 우리도 이제는 좀 아름답게 살 때가 되었다.
좌혜선의 작품은 수많은 SNS에 올라온 비포(Before) 공간 인증샷에 포함될 법한 '필수요소'투성이다. 베란다와 거실, 두 공간을 구분하는 삼면으로 분할된 유리창,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 건물, 베란다에 놓인 식물, 턱없이 큰 자리를 차지한 다인용 소파, 모서리를 동그랗게 다듬은 직사각형 탁자, 소파의 맞은편 벽을 차지한 장식장 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좌혜선은 작업 초기부터 한국인의 익숙한 일상공간을 장지에 분채로 어둡고 담담하게 표현했다. 그녀의 한국화는 여러 색과 세밀한 붓질이 든 어두운 공간과 이를 밀어내는 일상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강렬하게 대비된다.
거실창 안으로 들어온 빛, 냉장고에서 새어나온 빛, 가스레인지 위 후드에서 내려온 빛, 싱크 위 작은 창에서 들어온 빛들이 모두 집안의 어두움을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빛은 공간에 상주하는 인물의 표정도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하고, 어둠이 만든 그림자는 짙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요소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장소에 놓인 우리의 일상공간에 오히려 상주하는 인물은 어색하게 놓여 그의 흔적만을 더듬게 된다. 가득 들어온 빛으로 고립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애프터(After) 공간 인증샷을 찍어야 할까.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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