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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남관 '무제'

인간의 정신과 우주의 영원성

[그림산책] 남관 '무제'

전쟁의 여파가 남아있던 1950년대, 프랑스로 떠난 한국 작가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꽃피운다. 그 선구자적 역할을 한 작가가 바로 남관(1911~1990)이다.

남관은 프랑스로 건너간 첫 한국 화가이자, 프랑스 화단에서 위업을 이룬 제일의 작가이기도 하다. 1954년 도불 후 삶과 인간에 대한 단상들을 추상의 화면으로 풀어내었고, 1966년 망통 국제회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아마도 그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은 동양적인 정신을 서양의 매체와 기법으로 풀어낸 그 탁월한 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파리에 와서 정착했다. 그것은 서양미술을 직접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나의 고국을 결코 등지지 않았으며 정기적으로 고국을 찾곤 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서양의 것을 단순히 카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인스피레이션의 원천으로 삼고 또 하나의 윤리적·지적·정신적 변혁의 계기로 삼는다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남관의 말에서 읽히듯, 그에게 있어 서양은 새로운 영감의 제공자이자 동양의 정신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성공적 화합으로 이룩되었다.

파리에서의 남관은 구상으로부터 추상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남관의 작품은 서양의 기술과 동양의 정신을 담고 있어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동과 서의 융합과 조화의 특징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동양의 언어인 한자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글자 위로 색이 번지고 응고되며 그 안에서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상형문자와 같은 문자와 물감의 농담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우주의 영원성을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색채 감각으로 표현했다.

김현희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