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은지화가 부산에서 대형 벽화로 태어난다. '은지화를 밑그림으로 벽화를 그리고 싶다'던 그의 생전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중섭(1916∼1956)은 지난해 탄생 100년, 작고 60년을 맞았다.
그의 탄생 100년을 맞아 지난해 10월 20일부터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을 열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은 그가 창안한 작품기법 은지화를 벽화로 조성하는 방안을 부산 중구청과 추진 중이라고 28일 밝혔다.
'흰소'를 비롯해 '소' 연작으로 잘 알려진 이중섭은 은지화라는 독특한 미술기법을 창안했다.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긁어 그 위에 물감을 바른 후 닦아내면 긁힌 부분에만 물감 자국이 남게 된다. 그렇게 해서 깊이 패인 선으로 이뤄진 일종의 드로잉 작품이 은지화다.
은지화는 평면이면서도 층위가 생겨 보이고, 반짝이는 표면효과도 있어 매력적인 작품이 된다. 이러한 기법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나 금속공예 은입사 기법을 연상시킨다.
이중섭은 300여 점의 은지화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은지화를 주로 부산에서 그렸다.
부산은 1951년 12월부터 1953년 3월까지 이중섭이 가족과 이별하고 힘겨운 피란생활을 했던 곳이다.
그는 부산 중구에 있던 다방 '밀다원'이나 '금강다방'의 구석 자리에 앉아 틈틈이 은지화를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밀다원은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6.25 전쟁 때 부산에 피난 와서 집필한 소설 '밀다원 시대'의 배경이 된 다방으로, 당시 예술인들의 아지트였다.
그는 당시 은지화를 그리면서 "이것을 밑그림으로 벽화를 그리고 싶다"고 주변에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김영순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이중섭의 은지화는 부산과 관련이 매우 많다. 그의 대부분의 은지화는 밀다원과 금강다방 구석진 자리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면 된다"며 "그의 생전의 꿈이 이뤄지면 부산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중구청은 현재 벽화를 그려 넣을 적지를 찾고 있다.
올해 준공할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이나 동주여상 근처 등 용두산 주변의 담벼락이 유력시되고 있다. 중구청은 조만간 이중섭의 유족을 만나 벽화 조성과 관련해 구체적인 협의에 나설 계획이다.
김은숙 중구청장은 "부산 중구는 피란시절 이중섭이 가족과 이별한 후 외로웠던 삶을 예술적인 열정으로 이겨나갔던 곳"이라며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벽화 조성 세부계획을 마련 중에 있다"고 말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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