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 오윤(1946~1986)은 서울대 미대 재학 중인 1969년 시인 김지하, 평론가 김윤수 등과 함께 예술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모토로 '현실동인'전을 조직했으나 교수들과 당국의 반대로 무산되고 만다. 졸업 이후 짧은 군 복무(지병인 위장병으로 의병제대했다), 테라코타 벽화작업과 전돌 공장 운영, 목판화로 한 책표지와 삽화 작업, 선화예고 미술과 강사 등으로 1970년대를 보낸 그는 1979년 모더니즘 미술에 반대하며 '현실과 발언' 창립 발기인으로 참가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요 멤버로 활약했다. 단색화로 대변되는 1970년대 한국 미술이 예술성과 정신성을 추구한 순수미술의 시대였다면 1980년대 미술은 군사정권과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혼란한 정치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민중미술 작품의 대다수가 서민의 힘겨운 현실에 직설적으로 접근한 반면 오윤은 민중의 삶뿐 아니라 전통춤, 도깨비, 소리꾼 등 한국 전통문화적 소재를 목판화로 작업해 관객에게 보다 쉽게 받아들여진다. 조각칼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판화의 굵고 투박한 선은 민중의 소박한 삶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전통적 모티브는 진부하지 않게 현대적으로 민중의 정서를 표현했다.
어린 시절부터 춤에 관심이 많던 오윤은 직접 한국춤을 배우기도 하고 전통연희에 관심을 가지고 판소리, 남사당패 등을 찾아 다녔다.
'춤'은 관객으로 하여금 한눈에 한국 전통의 춤사위를 알아보게 한다. 오윤은 대학 시절부터 인체의 표현에 관심을 가져 많은 습작을 남겼는데 춤을 추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한자리에서 그려진 듯 막힌 데가 없다. 굵은 테두리 안에 군더더기 없이 새겨진 춤사위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소영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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