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오렌지색의 초상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만인의 연인' 마릴린 먼로의 얼굴이다. 먼로의 얼굴을 구성하는 촘촘한 픽셀(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엔 전혀 다른 인물이 들어가 있다. 다름 아닌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다. 케네디의 이미지는 약 500개의 점으로 반복돼 있고, 그것은 다시 행복을 머금고 있는 먼로의 얼굴로 형상화돼 있다. 일국의 대통령과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인물의 결합이 만들어낸 하나의 얼굴. 과연 누구의 초상화일까.
작품은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바꾼 김동유 화백(52)의 '마릴린 먼로(존 F 케네티)'다. 김 화백은 세계적인 스타와 유명인의 얼굴을 소재로 한 '얼굴-이중의 이미지'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끌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케네디와 마오쩌둥, 마돈나, 아인슈타인, 오드리 헵번 등의 얼굴을 픽셀 모자이크 회화기법으로 오버랩해 착시를 일으키는 이중의 이미지로 재탄생시킨다. 작가는 "작품 속 인물들의 사적인 비밀들은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 이미지들의 충돌은 그것을 접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정서로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한다.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치마를 펄럭이며 천진하게 웃는 금발의 섹시 스타, 평화와 자유주의의 대표주자이자 '미국의 영원한 젊음' 케네디. 지난 세기 두 사람의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반복됐을 것이다.
진부한 소재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선함을 잃은 두 얼굴의 '교차'와 그것이 만들어낸 '착시'는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준다. '먼로+케네디'의 조합이 만들어낸 착시는 자기 자신의 얼굴도 객관적으로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얼굴'을 표상한 듯하다. 작품은 거리나 방향을 조금만 바꿔도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닐까.
조은주 갤러리조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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