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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운초 박기준 '풍속도'

늘 봄날이어라

[그림산책] 운초 박기준 '풍속도'

조선 말기의 화원을 지낸 운초 박기준의 작품이다. 운초는 현재 전하는 작품이 많지 않으나 당시 산수와 화조에 특장이 있고 필치가 정교했다는 화평이 전하는 인물로, 이 작품에는 술상을 든 여종이 남녀 신발이 놓인 방문 앞에 선 모습을 그려 놓았다. 여성의 음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계류를 우측 상단에 두고 남정네의 급하게 벗겨진 신발을 가지런한 여인네의 꽃신과 함께 그렸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방안에서 벌어질법한 다양한 상황을 가늠케 한다. 또 술상을 들이면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궁금증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동일한 도안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전(傳) 신윤복 작 사시장춘(四時長春)'이 있는데, 아마 운초가 이 '사시장춘'을 접하고 그대로 방작(倣作)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작품 안에 '운초'라 적힌 인장이 찍혀 있지만 실제 인장이 아닌 붓으로 그린 것이며, 그림 바깥에 위창 오세창 선생이 운초 박기준의 필이라 배관한 내역이 남아 있다. 도안의 적절한 이해를 위해 혜곡 최순우 선생이 남긴 '사시장춘'의 해설을 첨한다.


"한적한 후원 별당의 장지문이 굳게 닫혀 있고, 댓돌 위에는 가냘픈 여자의 분홍 비단신 한 켤레와 너그럽게 생긴 큼직한 사나이의 검은 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아무 설명도 별다른 수식도 필요가 없다. 그것으로서 있을 것은 다 있고, 될 일은 다 돼 있다는 것이다."(혜곡 최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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