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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의 힙합읽기] 한국래퍼들이 마주한 ‘불편한 진실’



[유지훈의 힙합읽기] 한국래퍼들이 마주한 ‘불편한 진실’
“불편한 진실? 너흰 환희와 준희 진실이 없어 그냥 너희들뿐임”

스윙스는 2010년 7월 동료 래퍼 비지니즈의 노래 ‘불편한 진실’에 참여해 이와 같은 랩을 했다. 언더그라운드 활동하던 시절부터 동음이의어를 활용하는 ‘펀치라인’ 랩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그였기에 돋보이는 대목이다.

연예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가사의 의미를 알고 있다. 이는 어머니 최진실이 곁을 떠나 남게 된 환희-준희를 빗대어, 진실성 없이 음악을 하는 래퍼들을 디스한 것이다. 환희-준희를 향한 배려는 없으며 이를 단순히 공격적인 랩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고인과 고인을 떠나보낸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발표한지 7년이 다 되어가는 노래지만 최근 다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Mnet 예능프로그램 ‘고등래퍼’ 방송 이후 일게 된 스윙스의 태도 논란이 시발점이었다. 누리꾼들은 댓글로 ‘불편한 진실’ 가사를 언급하며 스윙스의 인성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를 본 최환희 양은 “예전 일이라도 화나는 건 여전하고 상처 받는 건 여전하다”고 토로했다.

몇몇 팬들은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스윙스를 감싼다. “미국인들은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고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못할 게 무엇이냐”는 것이 주된 골자다. 스윙스가 2013년 발매한 싱글 ‘불도저’의 가사는 팬들의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다.

“예술에 윤리라는 잣대 들이댈 거면, 넌 진보하지 말고 내 음악도 듣지 말고 닥치고 가서 집 정리나해”(스윙스-‘불도저’ 가사 中)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도 민주주의 국가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그 자유를 누린 후의 반응과 책임’은 분리해야한다. 작품이 윤리적으로 논쟁거리가 된다면 책임은 아티스트 본인의 몫이다.

“해외 유명래퍼들은 더 심한 가사로 랩을 한다”는 말 역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투팍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가사들로 비난 받았고 일부 노래들은 방송 금지조치를 당했다. 그가 지금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끊임없이 흑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꼬집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서다. 마초적이고 수위 높은 가사 때문이 아니었다.

문화적으로 유교 사상에 많은 영향은 한국이 과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해외 래퍼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런류의 가사를 지양하고 있다. 릭로스는 “여자 몰래 술에 강간약을 탄다”는 내용의 가사를 써 사회적으로 큰 물위를 빚어 현재까지 재개하지 못했으며, 닥터 드레를 비롯한 ‘갱스터 래퍼’들 역시 자신이 과거에 쓴 잘못된 가사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미국의 래퍼들 역시 표현의 자유를 누린 후 사회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 힙합의 가사 논란은 비단 스윙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와 같은 크루인 저스트뮤직 소속래퍼 블랙넛 역시 “솔직히 난 키디비 사진보고 X쳐봤지” “추락하는 건 네 위치지, 아니잖아 세월호의 진실이”라는 가사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브라운관에서 랩을 하고, 대학교 축제에 섭외돼 무대에 오르고 있다.

스윙스는 논란 후 최환희 양에게 사과의 의사를 내비쳤다. 자신의 가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늦게나마 수습해보려는 모양새다. 예능인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프콘 역시 과거 발매했던 ‘섹스 드라이브(Sex Drive)’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해 사과했으며, 많은 래퍼들도 자신이 과거에 썼던 가사에 대해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몇몇 래퍼들은 여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랩을 뱉고 있다.

한국의 힙합은 이제 막 대중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성장 가능성이 큰 이 장르지만 한국에서는 짧은 역사로 인해 성장통을 겪고 있다. 다만, 이 통증의 피해자는 힙합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 아닌, 여성과 약자들이다. 한국 힙합의 성장통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fnstar@fnnews.com fn스타 유지훈 기자 사진 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