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가 아니면 언제 인터뷰를 해볼 수 있을까’ 싶어 얼른 이들을 만나고자 했다. 드디어 정규 3집 앨범 ‘뷰티풀(Beutiful)’을 들고 온 노리플라이다. 정규앨범을 ‘완전함’이라고 보는 이들의 기준에 맞춘다면 무려 6년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촉촉한 봄비가 내리던 오후 한적한 카페, 정욱재가 검은 점퍼 후드를 뒤집어쓴 채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는데 “최소한의 짐으로 여행을 다닌다. 최근 다녀온 해외 워크샵에도 쇼핑백만 가져갔다”는 말을 듣자 웃음이 터졌다. 터벅터벅 등장한 정욱재의 한 손에는 어김없이 대충 접혀진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제가 2014년도에 군대 전역을 하고 그동안 순관이 형이 솔로 활동을 했죠. 전 금방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늦어지더라고요. 각자 곡을 써오는데 서로 스타일이 다르거든요. 저는 이정도면 됐다, 하는데 형은 꼼꼼한 면이 있어서 완벽하게 하는 스타일이에요. 저에게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죠.”(정욱재)
때마침 권순관이 도착했다. 검은 외투에 단정한 스카프까지, 말끔한 차림새를 하고 들어선 권순관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정욱재는 정반대의 따뜻한 그린티라테를 마시고 있었다.“전 계속 들어보는 타입이에요. 작업 기간을 세진 않았지만 노래를 몇 만 번은 들은 것 같아요. 막판에 가사나 이미지들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데모 속에 파묻혀 있는 곡을 듣다가 ‘이건 너무 아깝다’ 싶어서 작업에 돌입했죠.”(권순관)
데모는 약 3~40곡정도. 권순관은 노리플라이가 아닌 솔로 색깔에 맞다고 생각되는 노래는 과감히 제외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모인 곡이 총 13트랙이다. 타이틀곡 ‘집을 향하던 길에’는 회사 직원들의 가장 많은 공감을 얻어 선정됐다. 곡수가 많은 정규앨범에서 타이틀을 고르다보니 더욱 고심했다.
“정규앨범이야말로 뮤지션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결과물인 것 같아요. 전 실제로 좋아하는 음악을 앨범 통째로 듣는 스타일이에요. 영화도 장면 장면 보면 잘 모르잖아요. 최근에는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는 ‘문라이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는데, 호흡이 다르더라고요.”(정욱재)
권순관은 ‘노래의 기승전결’을 언급하며 앨범을 순서대로 듣기를 권했다. 노리플라이가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도 각각의 개성보다 그것들이 한데 뭉쳤을 때 어우러지는 조화다.
“사운드, 가사, 목소리, 톤... 그게 다 한 덩어리라고 생각해요. 뭔가 하나가 튀어서 ‘난 이걸 잘해’ 이럴 수도 있지만, 노래 전체적인 것을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정욱재)
“노래를 만드는 건 스트링, 베이스, 보컬 등의 하모니를 계속 듣고 체크하면서 ‘최적’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게 믹싱이라고 생각해요. 믹싱하면 할수록 또렷해지는 한 덩어리죠.”(권순관)
노리플라이가 장고 끝에 꺼낸 주제는 ‘아름다움’이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어찌 보면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혹자는 노리플라이를 향해 ‘시대의 역행’ ‘아날로그’라고 하지만, 일상의 감정을 좀 더 조심스레 지켜보고 세밀하게 다루는 쪽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보여지는 것들이 아니라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아름답다는 게 주관적이잖아요. 아름답게 보고자 했을 때 그 빛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힘들었던 순간도 지나고 보면 가치가 있듯, 해석에 따라 아름다움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 일상적인 것들, 손때 묻은 것들도 당연한 물건들인데 사실 삶을 가장 빛내주는 것들이죠. 그런 것들을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큰 세계인데 작은 세계라고 생각했던 것들.”(권순관)
“아무래도 환경 공부를 하다 보니 환경 철학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여기에서는 가치 없는 것들이 없거든요. 다들 쓸모가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아름다운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벌레마저도 아름다운 자연이죠. 가까운 주변도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싶어요.”(정욱재)
두 사람은 요즘 자신의 삶을 빛나게 해준 주변의 가치로 모두 ‘사람’을 꼽았다. 권순관은 “(주변 사람들과 나) 서로에게 답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작업 스타일과 성격이 전혀 다른 둘이 10년 넘게 호흡하며 서로 맞춰가고 이해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라인과 글자로 이루어진 ‘뷰티풀’ 커버에는 초록색 잎사귀가 우거져있다. 앨범 속 재킷은 투명한 하늘, 하얀 꽃, 반사되는 물결, 희미한 그림자와 같은 사진으로 구성됐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제일 신경 썼던 건 흐름과 감정, 그리고 ‘노래를 들었을 때 과연 이미지화될 수 있을까’였어요. 영상이나 영화음악 등은 그림에 노래를 빌려 이미지화하지만, 저희는 음악 하나만으로 설명해야 하잖아요. 감정적으로 얼마나 전달될 수 있을지 생각해요. 스스로 납득되지 않으면 주저하기도 하고, 자신이 없으면 빼기도 하고요. 선공개곡 ‘여정’도 원래 뺐다가 다시 넣은 곡이에요.”(권순관)
앨범 뒤편에는 정욱재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실려 있다. 노랫말 부근에는 권순관이 직접 적은 곡 설명도 적혀있다. 정욱재는 “뜰 수 있는 곡보다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곡들로 채워 넣었다”고 말했다.
“막연한 믿음일 수도 있지만, 유행과 주류를 좇지 않으려는 우리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묻어난 앨범임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곡이 주는 감동의 힘을 믿어요. 곡마다 가사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가 각각 드러나게 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들었을 때 아티스트의 생각과 신념이 묻어날 거예요.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고요. 뜬 구름 잡는 소리나 풋사랑을 이야기하기에는 저희가 너무 성숙해졌죠. 음악적으로 연륜이 쌓인 시간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권순관)
어느덧 데뷔한지 10년이 흘렀다. 노리플라이의 음악이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곤 할 수 없다. 특히나 ‘뷰티풀’은 멤버들이 30대가 되고난 뒤 처음으로 낸 정규앨범이다. 세월의 겹이 쌓인 앨범은 더욱 신중하고 견고해졌으며, 선배가수로서의 무게감도 더해졌다.“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라가는 게 이 앨범의 목표이기도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을 충분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그런 위치에 서 있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정욱재)“항상 생각을 깊이하고 스텝을 무겁게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은 있어요. 이걸 제대로 해야 넘어갈 수 있는 신중함 같은? 리스너를 설득시키지 않은 상태로 후배들 앞에 마주할 수 없으니까요. 앞서갈 생각도 없고, 모두 다 같이 가야하는 것 같아요.”(권순관)
눈 여겨 보고 있는 후배가 있냐고 묻자, 권순관은 “음악의 결이라든가 아티스트, 보컬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서 조소정을 언급했다. 멜로망스도 거론했다. 두 뮤지션 모두 노리플라이와 같은 소속사의 레이블 소속이던 터라, 민망했는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라며 웃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노리플라이는 합주를 위해 떠나야 했다. 인터뷰 당시 노리플라이는 단독 콘서트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편견일 수도 있지만, 이토록 감수성이 흘러넘치는 음악과 가사를 쓰는 노리플라이라면 분명 책을 많이 볼 것이라는 궁금증을 풀어놨다.
장욱재는 “10대 시절 책을 많이 봤다”면서 20년도 더 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의 그가 생각을 떠올리는 최적의 루트는 여행이었다. 권순관은 “아버지가 책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계셔서 그런지, 약간 활자 중독이 있다. 스마트폰이든 뭐든 글자를 봐야하는 게 있다. 그래서 읽는 것들이 좀 많다”고 재미있는 답변을 내놨다.
노리플라이와 함께한 시간의 여운은 길었고 아름다웠다. 정말로 주변에는 늘 아름다운 것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노리플라이는 자연스럽게 이 어려운 깨달음을 던졌다. 노래 또한 어두운 곳, 곁에 머물며 조용히 빛을 발할 것이다. 권순관이 “살면서 빛날 수 있는 순간에 이 노래가 있다면 충분하다”고 이번 앨범을 한 마디로 정리한 것처럼 말이다./fnstar@fnnews.com 이소희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